[파워CEO]임화섭 가온미디어 사장

 가온미디어는 지난 4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 교통 요충지 중 하나인 야탑사거리 근처에 170억원을 투자한 8층짜리 사옥에 입주했다. 중소기업에는 다소 과분해 보이지만 임화섭 대표(45)에게는 이 사옥이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가온의 비전을 위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임 대표는 신사옥 입주 후 열린 첫 간부 회의에서 “이곳을 내 무덤(종착역)으로 만들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자”고 말했을까. 스스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고 자기 최면을 건 셈이다.

 

 # 창업 7년 만에 신사옥 건립

 가온미디어는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업체다. 본사 건물을 지을 정도면 상당한 기업 연륜을 예상하지만 창업한 지 불과 7년이다. 임 대표는 2001년 당시 ‘잘나가는’ 삼성전자를 뒤로 하고 빈손으로 가온미디어를 창업해 7년 만에 매출 2000억원을 코앞에 둔 회사로 만들었다. 2005년 코스닥 입성 후 대부분의 기업이 겪는 ‘성장통’ 한 번 없이 지속 성장을 이뤄냈다. 오히려 코스닥 입성 다음 해인 2006년 매출 808억원, 2007년 1203억원으로 처음 1000억원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무려 50%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주주에게 약속한 목표는 2000억원이지만 내심 임 대표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창업 이 후 큰 굴곡도 없었다. 창업 초기가 그나마 위기라면 위기였다. “삼성전자 연구소 시절 미국 ‘디렉TV’의 방송 수신기를 개발한 경험이 셋톱박스에 입문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미국에 3년 가까이 머물면서 셋톱박스를 포함한 멀티미디어 분야의 기술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실리콘밸리의 활발한 창업 분위기에 매료될 때였죠. 결국 무작정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고 큰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당시 임 대표는 창업 준비는커녕 대차대조표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경영에 관해서는 ‘초짜’였다. 역시 세상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급기야 한 달 정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 두 손, 두 발을 다 드는 상황에 몰렸다. 한 달 만에 ‘항복 깃발’을 든 것이다. “며칠 밤을 고민하다 결국 삼성 출신 창업 동기 10여명을 모아 놓고 다시 삼성으로 돌아가자고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었고 가온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기초 체력’이 중요하다.

임화섭 대표는 7년 동안 굴곡 없는 꾸준히 성장한 비결을 기초 체력에서 찾았다. “기업이 어느 정도 궤도가 오르자 주변에서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투자자들에게 사기치지 말자는 신념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본, 즉 창업 초기 ‘헝그리 정신’을 잊지 말자고 늘 마음속으로 되새겼습니다.” 실제 그는 인터뷰 내내 수없이 기초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은 일시적으로 사업 아이템과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적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술력·인재·자금과 같은 기초 체력이 없으면 그때뿐입니다.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탄탄해야 진짜 위기에서도 강하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임 대표가 말하는 기초 체력은 결국 인재로 이어진다. 당연히 직원 사랑도 남다르다. 오죽하면 직원 때문에 사옥을 마련했다고 말할 정도다. “벤처지만 2001년 창사 이후 대부분의 핵심 연구 인력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자부심과 결속력이 남다릅니다. 사옥도 이들이 더욱 쾌적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조그만 배려입니다.”

 그는 “다소 외진 경기도 성남시 인근의 한 공단에 허름한 본사를 둔 바람에 어렵게 데려온 우수 인재가 입사를 포기하는 일도 다반사였다”며 “새 사옥으로 이전해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출퇴근이 편해져 투자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

 

 # 인재를 통한 기업 경쟁력 ‘선 순환론’

 임 대표가 우수 인재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재가 결국 좋은 제품과 뛰어난 기술을 만드는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창업 후 고수해 온 전략이 기술과 제품을 차별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비슷비슷한 셋톱박스 업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차별화고 이는 기술력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죠. 기술력을 위해서 핵심 인재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임 대표가 말하는 인재를 통한 ‘기업 경쟁력 선 순환론’이다. 가온은 실제로 제조업체라기보다는 첨단 기술연구소다. 전체 임직원 230명 중 엔지니어와 기술진이 150여명이다. 직원 3분의 2 이상이 기술 개발 인력이다. 생산은 모두 외주로 돌리고 있다. 국내 두 곳과 중국·인도 등 전 세계 6개 업체에서 아웃소싱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해 90% 이상을 해외로 수출한다.

 직원에 쏟아 붓는 투자도 남다르다. 영업팀은 기본이고 사내 연구진과 엔지니어도 비즈니스 목적이 아니더라도 학술 회의, 기술 전시회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인센티브도 파격적이다. 열매는 주주 못지않게 직원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해마다 연봉의 30∼50% 이내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임 대표는 “적절한 보상은 꼭 필요하다”며 “단기로 보면 수익이 줄어들지만 직원 로열티를 높여 장기적으로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가온미디어 이직률은 낮다. 특히 연구직 이직률은 ‘제로’에 가깝다.

# 다시 ‘초심으로’

임 대표는 올해를 ‘제2의 도약기’로 삼고 있다. 인텔에서 새로운 칩세트를 공급받아 개발 중인 차세대 셋톱박스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제품은 TV는 물론이고 집 안의 모든 전자 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홈서버 형태의 미디어 셋톱박스다. 또 하드웨어를 넘어 게임·방송 콘텐츠 등 방송과 통신용 플랫폼 시장도 넘보고 있다. 올해 초에 새 사업으로 시작한 모바일 단말기 ‘유팝(UPOP)’도 신성장 분야로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유팝은 셋톱박스에 내장한 콘텐츠를 내려받거나 TV를 보면서 녹화가 가능한 복합형 단말기다.

“셋톱박스 업계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시장은 그만그만한데 경쟁은 여전히 치열합니다. 게다가 셋톱박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방송과 통신 환경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주목하는 화두는 ‘컨버전스’다. 차세대 셋톱박스에서 단말기까지 모두 컨버전스 환경을 겨냥하고 있다. “단말기·소프트웨어·미들웨어·콘텐츠 분야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어느 한 쪽을 떼 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소프트웨어와 미들웨어·콘텐츠 두루 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플랫폼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가 바라 보는 시장 전망은 그렇게 밝지 않다. “고유가로 진짜 영향을 받는 시점은 지금부터 3개월 후입니다. 원가 경쟁력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면서 1차로 부품업체 구조 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이후 세트업체도 적잖은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화섭 대표는 여전히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기초 체력이 튼튼한 기업은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임 대표는 “사옥을 마련한 올해를 제2 창업의 해로 삼아 디지털 컨버전스 산업의 미래를 주도하는 기업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힘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

임화섭 대표는.

 전남 고흥 출신이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종합연구소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엔지니어다. 연구소 시절 방송 수신기로 시작해 디지털TV까지 멀티미디어 기술에 푹 빠져 살았다. 2001년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무작정 사표를 썼고 주변 선후배와 힘을 합쳐 가온미디어를 창업했다. 창업 후 2∼3년 동안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창업 때부터 수출에 승부를 걸었고 지금도 틈만 나면 여권을 들고 해외에 나간다. 한 달에 거의 10일 정도는 해외에서 보낸다. 그가 바라는 가온의 비전은 단순하다. ‘장수 기업’이다. 삼성·LG와 같은 오래갈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다. 장수 기업은 단지 제품과 기술만으로 힘들다. 직원은 물론이고 고객에서 파트너까지 도움이 절대적이다. 순수 우리말로 가운데를 뜻하는 ‘가온’을 회사 이름으로 정한 것도 항상 시장과 소비자의 중심에서 서고 싶다는 이런 의지의 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