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산업이 기로에 섰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순수 IT산업의 육성을 지양하고, 기존 산업과의 시너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입지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IT산업에 대한 시각은 특정 분야에서는 새로운 입지를 키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임베디드 산업용 소프트웨어(SW)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디지털 컨버전스, 모바일 인털리전스 등의 기술 발달에 힘입어, 산업과 제품의 경쟁력이 제품에 직접 탑재되는 임베디드SW에 좌우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임베디드SW는 다른 하드웨어(HW)나 시스템에 내장돼 있는 SW를 말한다. 범용 컴퓨터의 SW와 달리 디지털정보가전기기나 산업·군사용 제어기기용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내장돼 그 역할을 한다.
임베디드SW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 임베디드SW 응용 시장은 국방·항공, 정보가전, 산업전자기기, 차량에 고루 분포돼 있으며, 특히 미국과 유럽은 군사·과학·교통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임베디드SW 위상 변화=선진 산업국을 중심으로 임베디드SW는 기기에 탑재되는 하나의 부품·부속물을 넘어 전문화된 산업군의 하나로 그 위상이 굳어가고 있다.
요구 스펙에 따른 하도급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임베디드SW 기업이 고객사의 제품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아키텍처 설계, 프로세스 관리, SW 개발, 테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모델로 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산업별로 제품에 대한 시장요구가 다기능화·첨단화되면서 더 이상 고객사 내부역량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과거의 SW 개발 하도급 방식이 아닌 자체적인 연구개발(R&D) 및 독자기술로써 제품 기능을 설계·개발하는 방식으로 임베디드SW 기업이 지식재산권 보장과 함께 라이선스·로열티 매출을 얻고 있는 것도 배경이다.
하지만 국내 임베디드SW 산업은 아직 독자적 기반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라이선스·로열티 시장의 87%가 해외 글로벌 기업의 몫이라는 점, 그리고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HW 중심의 발전 전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임베디드SW, 전통산업과 SW 융합의 최적 수단 =SW는 한마디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현실에서 실현해 주는 언어다. 따라서 지식·혁신주도형 경제구조 전환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제기되는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제고 등은 이제 임베디드SW와 따로 떼어 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는 임베디드SW 산업 성장의 기초가 될 ‘소프트웨어링 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링이란 SW기술을 새로운 지식·경험·감성 등 무형의 지적자산과 접목해 산업 내 또는 산업 간 융합을 촉진시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개념이다. 이미 자동차·조선·국방·의료·건설 등의 분야에서 최적의 소프트웨어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써 정부는 △SW를 통한 각 산업의 부가가치 증대 △서비스모델 중심의 신성장시장 확보 △일자리 창출 및 원격지 개발등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기대하고 있다.
◇IT산업 넘어 비IT산업으로 질주=임베디드SW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더불어 그 역할이 분명해졌다. 1980년대 이후 가전제품에 마이크로프로세스 탑재가 일반화됐다. 이후 우리가 흔히 시스템반도체라고 부르는 SW 집약 칩이 개발되면서 다양한 정보단말 및 모바일 기기,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전자제품에 임베디드SW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또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화되고 제품기능이 복잡해지면서 임베디드SW에 대한 활용범위는 지속 확대돼 가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최근에는 이와 같은 추세가 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을 물론이고 항공·의료·건설 등 비IT산업에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과거 기계적인 부품 형태로 설계해야 했던 기능들이 SW적으로 구현되면서 첨단화·경박단소화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첨단 자동차는 새로운 기능의 추가는 대부분 SW의 혁신과 관련이 있다. 또 의료장비 가운데도 단층촬영, 엑스레이, 뇌파측정장비 등과 같이 이미지 또는 영상처리 기능이 핵심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임베디드SW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 기고/정호교 한국SW진흥원 임베디드SW사업팀장
“이제는 자동차!”
전 세계 SW시장을 장악했던 빌 게이츠의 말이다. 향후 SW의 활동 무대로 자동차를 주목한 것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니다. 신규모델의 개발비 중 SW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이제 자동차는 기계와 전자장치를 구동시키는 SW, 즉 임베디드SW의 결합체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SW로 인해 제품 또는 산업의 고기능화, 지능화가 이뤄지면서 부가가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 새로운 융합제품, 서비스 비즈니스가 창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조선 등 특정 제조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SW가 핵심 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도 제조업과 SW의 융합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
하지만 핵심역할을 수행하는 임베디드SW 분야를 선진국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고 SW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여전히 HW 중심의 제조업이 강조되고 있고, 지적 자산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 SW개발자 및 기업의 의욕이 저하되고 SW 관련 학과에 대한 인기는 날로 시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경제부가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에 SW를 융합해 고기능·고부가가치화를 꾀하는 SW융합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SW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의 수립 및 추진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도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새로운 기회인 SW융합 활성화를 위해서는 짧은 호흡의 일과 긴 호흡의 일이 있을 것인 바, 긴 호흡의 일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융합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분야의 공감을 기반으로 관련법의 제·개정이 필요하다. 융합은 별개의 다른 산업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국내 산업은 각 산업 중심의 법체계를 관련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즉, 자동차 분야는 지식경제부가, 의료는 보건복지가족부가, 교통은 국토해양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어 융합비즈니스 구현에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융합 환경에 적합한 관련 법안의 정비가 필요하다.
더불어 융합 환경에 대응한 우수 인재를 양성할 대학 교육과정 개편이 시급하다. 융합 산업 환경에는 다양한 도메인 지식을 겸비한 인력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국내 대학의 현황은 그러하지 못하다. 자동차는 자동차학과가, SW는 전산학과나 컴퓨터공학과가 있어 각각 해당 산업 영역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양하고 있다.
하지만 융합 산업현장에서는 어느 특정 산업의 영역이 아닌 다양한 산업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멀티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제 간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대학의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이미 대학에서도 융합·실용 분야 교수인력의 채용수요를 늘리고 있는 현상은 보다 적극적인 대학 거버넌스 차원의 제도개선을 기대하게 한다.
이공계로의 우수 인력 유입이 저조하고 SW 관련 학과에 대한 지원율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 과정을 융합 산업 환경에 맞게 통합을 추진하는 일은 이공계와 SW산업 분야의 우수 인력 확보에 대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융합산업에 대한 국가적 역량의 과감한 집중이 필요하다. 융합산업은 기존산업의 고기능화·지능화를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새로운 산업을 파생시키고 신규 서비스를 창출하게 해 내수 활성화와 고용창출로 이어진다.
또 선도적 R&D 추진과 법제도 개선 그리고 적절한 우수인력 공급과 대중소기업 상생 기반의 융합비즈니스 창출 및 거래관행개선 등이 어우러진다면 SW산업, 나아가 우리 경제는 융합SW를 딛고 멋지게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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