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가 됐다.” 그동안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고수하다 최근에서야 DRM 프리로 돌아선 이동통신 업계 모 관계자의 말이다.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DRM 정책을 고수했지만 효과보다는 이용자에게서 뭇매만 맞는 등 후유증이 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DRM은 저작권 보호의 상징이다.
그러나 DRM의 진짜 중요한 기능은 보호 자체라기보다는 ‘용인된 사용자가 콘텐츠를 사용하고 적절한 요금을 치르도록 만드는’ 저작물의 활용관리다. 영국 현지 취재에서 만난 모바일 콘텐츠 유통업체 본조르노의 음악 DRM 활용 팁은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선호도를 매기는 기술을 적용해 선호도가 높은 콘텐츠의 DRM은 강하게 적용하고, 다른 콘텐츠는 적정하게 풀어서 활용을 유도하고 있다. 이 회사 루카 파나노 마케팅 디렉터는 “DRM 기술을 적용하는 기본 원칙은 콘텐츠 질이나 시장 요구에 따라 소비자 선택권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권이 없어 DRM 음원의 합법적 구매와 불법 다운로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DRM이라는 기술을 두고서도 이를 바라보는 기본 철학과 접근 방식에 따라 ‘보호만’ 할 수도, ‘보호와 활용’을 동시에 추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작물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는 저작권자, 플랫폼 사업자, 이용자 등 이해 당사자의 합의다. 저작권 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작권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좋은 기술도 한쪽으로 역할이 쏠렸다. IT 강국 노하우를 접목한 많은 저작권 기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