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현대인은 두 가지 시계를 갖고 있다. 하나는 그 문자판 위를 바늘이 돌아가며 시간을 알리는 아날로그형이며 또 하나는 직접 숫자가 나타나서 시간을 표시하는 디지털형이다. 아날로그형은 하루의 시간을 문자판에 공간화한 것이고 그 위를 시침, 분침 그리고 초침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총체적이고 연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전체를 통해 한 부분의 시간을 본다. 시침이나 분침을 보고 시각을 알아내는 것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나 달의 위치를 보고 그 시각을 알아내는 것과 같다.
디지털형 시계는 오직 지금의 시간만을 알려줄 뿐 거기에는 바늘이 시시각각으로 연출해내는 기하학적인 구조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시간은 단절적이고 점멸적인 것이다. 그렇다. 디지털형 시계에서는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깜빡이고 있을 뿐이다. 그 대신 디지털형 시계는 초까지도 분명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나타내서 보여준다. 아날로그형의 시계에서는 시간은 대충 있는 것이다. 초침은 있어도 그것은 단지 시간이 고여 있지 않고 흘러가고 있음을, 말하자면 지금 시간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그리고 분침 역시 구름 사이를 지나가는 달처럼 어렴풋하게 5분 단위의 숫자를 지나간다. 그러나 디지털형은 시간을 보는 그 애매성을 추방한다. 맞든 틀리든 거기에서의 시간은 초 단위로 분명히 존재한다.
-1998 한양대 정시 재인용
(나)휴대폰이 없으면 왠지 불안하고,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를 끄지 못하며, MP3 플레이어 없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이가 많다. 디지털 휴대기기가 확산되면서 발생한 문제점이다. 잘 이용하면 편리하고 좋은 도구가 도를 넘는 순간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기다. 문명의 이기인 디지털은 양날의 검과 같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디지털이다.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체내가 음식이나 약물의 독성에 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이다. 사실 어떤 것에 중독된다는 것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일에 빠진 워커홀릭이나 커피 중독, 편집 중독 등이 주는 의미는 가볍지만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의 의미는 섬뜩함마저 자아낸다.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댓글이 몇 개나 달렸을지 자주 확인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도 디지털 중독이다.
디지털 중독은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낯선 길에 들어섰을 때에 난감함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요즘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이 거의 달려 있다. 심지어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지도와 이정표만으로 잘 찾아가던 길도 기기 장착 후에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 외에는 찾아갈 수가 없을 정도다. 인간의 도구로 사용돼야 할 디지털기기가 인간을 지배하는 듯하다.
컴퓨터나 휴대폰 등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전에는 기억이 잘 나던 친구나 가족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디지털 치매 현상까지 등장했다.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된 이름이나 단축키로 전화를 걸다 보니 전화번호를 기억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젊은 층은 대부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고 휴대폰이나 DMB·PMP 등으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이 크게 늘었다. 대화가 없어지고 사람 냄새가 묻어나지 않는다.
-전자신문 2007년 12월 3일자
(다)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한 디지로그(digilog)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2006년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인류의 미래 삶을 변화시킬 열 가지 기술에 햅틱(haptic)을 선정할 정도로 디지로그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이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회는 하이테크화될수록 감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신기술이 출현하면 초기에는 기술이 사회발전을 견인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숙기에 이르면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넘어가 인간의 감성이 적극 발현되기 때문에 기술과 감성이 융합된 디지로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들어 성공한 기업들을 봐도 신기술 개발에만 열을 올리기보다는 인간적인 가치를 디지털 기술로 잘 구현한 경우가 많았다.
이어령 교수도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후기 정보사회의 선두주자로 디지로그를 꼽는다. 디지털 기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아날로그가 보완함으로써 새로운 틈새의 영역을 장악해 사회, 문화, 산업 전반에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만으로는 21세기를 지배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반영된 것으로 가장 좋은 디지털이란 감성적이고 따뜻하며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가상세계와 실제세계의 결합, 정보통신기술과 인간관계의 만남, 이성과 감성의 만남, 차가운 기술과 따뜻한 정(情)과 믿음이 만나는 디지로그의 삶이 균형 있고 조화로운 인간을 형성하기 위한 대안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처럼 디지로그는 단순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넘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희망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로그 상품은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셔터소리와 수동 기능을 장착한 디지털 카메라,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점을 통합한 디지로그북 등은 차가운 디지털에 따스한 감성을 입힌 디지로그 제품이다. 휴대폰의 터치스크린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상품이다.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촉각을 동시에 활용, 사용자가 휴대폰과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줌으로써 감성을 자극한다. 집들이, 돌잔치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디지털 액자도 아날로그 감성이 돋보인다. 사진 파일을 저장해 놓고 슬라이드쇼를 설정하면 액자 속 LCD화면의 사진들이 순차적으로 바뀐다.
디지로그 현상은 눈에 보이는 제품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통신회사의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캠페인이나, 네티즌이 매일 업데이트하는 포털사이트 지식인, 그리고 한국인의 독특한 사이문화에 기초한 싸이월드도 디지로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한국야구의 힘은 디지로그 현상의 결정판으로 불릴 만하다.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데이터 분석에, 끈끈한 친화력에 기초한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의 믿음이 보태져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정사업본부도 디지로그 트렌드에 발맞춰 인터넷으로 편지를 쓰면 이를 출력해 집배원이 직접 배달해 주는 ‘인터넷 맞춤형 편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편지는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썼지만 집배원이 아날로그로 배달하기 때문에 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축하나 감사, 사랑이나 우정 등을 표현할 때 전자우편보다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어 인기다.
-정경원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장, 전자신문 2008년 8월 26일자
1.내용 파악하기
제시문 (가)를 바탕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특성에 대해 3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2.비판하기
1980년대 이후 출생하여 대학 졸업 시점까지 최소 20만건 이상의 문자 메시지와 e메일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고 있다. 제시문 (나)를 바탕으로 디지털 문화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8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3.종합하기
디지털 혁명은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시문 (다)를 바탕으로 디지털 혁명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7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김은정, 엘림에듀 집필위원 / 엘림에듀 대치 직영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