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오는 2010년 초 가동을 목표로 내년 초부터 세계 최대 LCD 기판 크기인 11세대 투자를 단행한다. 그 대신 내년 하반기로 잡았던 8세대 LCD 패널 2기 라인(8-2)의 2단계 투자를 보류하기로 했다. 최근 LCD 패널 시장이 위축된 조짐을 보이는데다 내년 시황도 불투명해 공급과잉을 초래할 무리한 추가 투자를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11세대로 건너뛰는 것은 양산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일본 샤프가 오는 2010년 초 10세대 라인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비슷한 시기에 더 큰 크기의 차세대 라인을 가동함으로써 세계 1위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샤프의 10세대 라인 가동 시점인 2010년 초 양산을 목표로 내년 초부터 11세대 투자를 조기 집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가 구상 중인 11세대 라인은 투입원판 기준 ‘3000×3320㎜’ 크기로, 현존하는 LCD 패널 원판 크기의 한계로 여겨진다. 50인치대 이상 대형 TV용 패널에 최적화됐다. 비슷한 시기 양산 가동하는 샤프의 10세대 라인은 투입원판 기준 ‘2880×3130㎜’의 크기로, 40인치대 TV용 패널이 주력이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당초 내년 하반기 장비를 발주키로 했던 8-2 2단계 투자는 2010년 이후로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자칫하면 LCD 패널 시장 조기 공급과잉을 불러올 수 있는데다, 막대한 추가 투자를 감수하면서 8세대 이하 기존 라인의 양산 경쟁에 머물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8-2 2단계 라인을 애초부터 내년 투자계획으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차세대(10세대 이상) 투자와 병행할지를 신중히 고려해왔던 사안”이라며 “LCD 패널 시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연말까지 시장 추이를 지켜본 다음 내년도 투자계획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한·안석현기자 hseo@
◇뉴스의 눈
삼성전자가 11세대 조기 투자 및 8세대 추가 투자 연기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세계 LCD 패널 시장 1위로서 ‘자존심’과 함께 시황 악화를 염두에 둔 ‘실리’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무엇보다 신경 쓰는 것은 내년 이후 시황이다. 지난 4월 일본 소니와 총 2조원 가까운 합작투자를 거쳐 투입 원판을 기준으로 월 6만장 규모인 8-2 1단계 라인을 내년 상반기 양산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당초 계획으론 내년 하반기 8-2 2단계 라인 투자를 단행하기로 장비 협력사들과 논의해왔다.
최근 시황이 악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갑작스럽게 내년 투자 계획을 대폭 조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더욱이 2010년은 한국·대만·일본 패널업체들이 8세대 이상 차세대 라인을 줄줄이 가동하는 탓에 가뜩이나 공급과잉이 예상되는 시기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양상을 보면 내년 시장도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삼성전자도 과거처럼 무작정 양산 경쟁을 주도하겠다는 식의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로선 세계 1위의 체면을 구길 수 없는 노릇이다. 합작사이자 거대 고객사인 일본 소니가 샤프와 공동 투자를 통해 오는 2010년 초 세계 최초로 10세대 라인을 가동하는 마당에 삼성전자가 8세대에만 머무르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 8세대 추가 투자를 유보하는 대신, 세계 최대 규모의 11세대 라인을 샤프 10세대 라인의 양산 시점에 맞춰 조기 가동키로 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또 다른 전문가는 “업계 1위인 삼성전자가 차세대 투자 경쟁에서 샤프와 소니에 밀리는 모양새가 안팎에서 좋게 보일 수 없다”면서 “11세대 조기 투자를 통해 자존심도 지키고 생산능력도 늘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샤프 10세대 양산 시점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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