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맛있는 영화]20세기 소년

[한정훈의 맛있는 영화]20세기 소년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돼 영광이다. 우라사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정중히 연기하려고 한다.”

 영화 ‘20세기 소년’에서 주인공 겐지의 친구인 오쵸 역을 맡은 도요카와 에츠시가 캐스팅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정중한 연기? 일본 망가에 관심없는 독자라면 ‘정중’이라는 의미가 다소 과장됐다고 생각하겠지만 드래곤볼 등 적어도 유년 시절 망가 좀 만져봤다는 독자는 알 거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가 말한 ‘영광’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친구여 어디로 가는가’라는 선문답으로 시작하는 ‘20세기 소년(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이 드디어 국내에 개봉한다. 지난달 30일 일본 개봉을 성공적으로 마친 20세기 소년은 이달 11일 한국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영화 20세기 소년은 개봉 이전부터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일본 역사상 전례없는 3부작 제작과 600억원이라는 거대한 제작비 투입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은 뭐니 뭐니 해도 감독에게 집중됐다. 복잡다단한 스토리 때문에 절대 영화화할 수 없다고 판명난 만화를 감히 영화로 만들고자 한 츠츠미 유키히코에게로 말이다.

 알려졌다시피 20세기 소년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장장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잡지 ‘빅 코믹스피리츠’에서 연재됐던 인기 만화다. 당시 이 만화는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메시지로 총 12개국 출판, 2000만부 이상 발행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이로 인해 원작자인 우라사와 나오코는 일본 만화의 신 ‘철완 아톰’의 데사카 오사무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만화의 인기 비결은 ’세계 멸망’이라는 만국 공통 키워드 때문이었다. 여기에 우라사와는 본인의 놀라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방대한 스토리를 더해 전 세계 만화 팬을 일본 망가 앞에 집결시켰다.

 만화 완결 후 얼마 안 돼 결정된 영화화는 팬들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1969년부터 2018년까지 걸친 수많은 사건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각종 테러 장면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캐스팅과 투자자가 발표되니 억측도 많았다. 주인공 겐지 역을 맡은 가라사와 도시아키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그는 일본판 ‘하얀거탑’에서 의사 자이젠 고로(한국판 장준혁) 역을 맡아 열연했지만 지나치게 모범생스럽다는 평이 많았다.

 어쨌든 영화는 완성됐다. 지난 2일 국내 언론에 공개된 20세기 소년은 ‘팬들의 두려움(명작을 망칠까)’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노력은 높이 살 만했지만 완성도 면에선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완벽한 복기(復記)와 디테일은 별개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라고나 할까. 1부 ‘강림’은 22권의 단행본과 2권의 별본으로 이뤄진 원작 중 1∼8권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69년 겐지를 비롯한 소년들은 비밀 기지에서 ‘예언의 서’를 만든다. 20세기 말 절대 악이 등장해 바이러스로 전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하지만 30년 후 이는 현실이 된다. 어릴 적 친구를 통해서 말이다. 겐지는 친구를 막기 위해 친구를 소집한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내용 정리에 점프컷(혹은 플래시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감독은 원작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도 아주 친절하다. 간결하게 정리된 메타포는 점프컷을 타고 30년의 세월을 넘나들지만 이해를 강요하긴커녕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러나 SF블록버스터로서의 정체성엔 물음표를 남겼다. 6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대형작이지만 돈을 썼다는 생색을 영화에서 찾긴 힘들다. 오히려 어설프다. 긴장감을 끊어놓는 살해장면은 물론이고 마지막 ‘피의 그믐달’ 장면에 등장하는 원자 로봇은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하다. 향후 2, 3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 ‘강림’의 기술로는 한국 관객을 메치긴커녕 팔을 비틀기도 힘들어보인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