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 전기자동차 오해와 진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로 개발 중인 시보레 볼트 컨셉트카. 한 번의 충전으로 64㎞를 주행할 수 있는 이 차는 2010년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로 개발 중인 시보레 볼트 컨셉트카. 한 번의 충전으로 64㎞를 주행할 수 있는 이 차는 2010년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최근 유가의 고공 행진은 단기적 급등세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면도 없지 않으나, 중장기적으로 신흥 시장의 석유 수요가 증가하고 생산량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을 고려하면 예전과 같은 저유가 시대가 돌아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협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쏠려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저탄소 그린 성장’을 기치로 ‘그린카 4대 강국’이라는 하위 목표를 제시했다.

그린카란 저공해 고효율 차량을 칭하는 말인데, 넓게 보아 연비가 좋은 소형차와 디젤 자동차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 연료전지 자동차 그리고 전기자동차가 이에 속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다시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같은 절약 우선형 가솔린-전기모터 하이브리드, 구성은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인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렉서스의 일부 차종), 현대자동차에서 개발 중인 LPG-전기모터 하이브리드, 향후 출시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으로 세분화된다. 현시점에서 상업화됐거나 가시권에 들어온 그린카는 주로 이 하이브리드카 종류들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진정한 그린카는 연료전지 자동차와 충전식 전기자동차뿐이다. 연료전지 자동차는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해 본격 등장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사용돼 왔고, 별도의 인프라 구축이 불필요한 듯 보인다. 전기자동차에 대해 환상이 있는 사람도 많고, 효율이 높고 깨끗한 전기자동차가 왜 널리 보급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 석유회사들이 지난 100년간 전기자동차를 죽이기 위해 갖은 술책을 부려왔다는 음모론까지 퍼지기도 했다. 이들은 20세기 초 자동차라는 도로교통 시스템의 태동기에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가 경쟁했던 역사를 들춰내 당시 최고속도 경쟁에서 전기자동차가 앞선 적이 있음을 강조하곤 한다.

과연 사회가 잘못된 경쟁기술을 선택했기 때문에 전기자동차는 100년간 틈새 상품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여전히 고가인 2차전지의 가격이 낮아지고 조금만 더 기술을 발전시키면 전기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여기에서 전기자동차에 대한 지나친 환상에 약간의 흠집을 내려 한다. 정확한 진단은 진보의 밑거름이다. 차량 단위로 보면, 배터리와 전기모터의 조합은 충방전 효율까지 고려하더라도 분명히 내연기관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에 충전할 전기의 출처, 충전 후 운행하지 않아도 자연방전되는 전력량, 항상 만충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상 플러그를 꼽아 놓는 습관, 급가속 시 급격히 증가하는 전력소모, 충방전이 거듭됨에 따라 열화되는 2차전지 등등까지 고려하면 전기자동차의 에너지 효율은 그다지 환상적이지 않다. 발전에서 화석연료의 이용이 중단되지 않으면 전기자동차란 단지 차 안에서 태울 연료를 다른 곳에서 태우는 것뿐이다.

게다가 전기라는 에너지 형태는 저장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석유를 태워 만든 전기를 송전하고 충전해 쓰는 것보다 바로 석유를 태우는 게 낫다. 또 연료탱크 속 기름과 달리 전기 에너지는 차를 쓰지 않아도 사라진다. 사람들이 항상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 매일(심지어 틈만 나면) 충전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급히 나갈 일이 생겼는데 ‘충전 중’이라면 난감하다.

한 번 충전에 400㎞를 달릴 수 있다고 해도 400㎞ 간 뒤 8시간 충전해야 한다면 곤란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차를 하루에 100㎞도 운행하지 않지만 중간에 주유만 하면 수천㎞ 달릴 수 있는 차를 원한다. 그렇다면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 ‘전지교체소’에서 완충된 전지로 교체해 주면 어떨까. 이스라엘의 한 벤처기업이 이런 개념의 전기자동차 리스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난망하다. 실사용 수준에서 전기자동차에는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전지가 실려야 하기 때문에 전지를 교체하는 작업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이상적이기는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공용 자전거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기자동차 수천대를 공동 이용하는 것이다. 운행 중 방전 경고가 켜지면 환승센터에 들러 완충된 자동차로 바꾸어 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들의 ‘마이카’ 소유욕을 생각하면 현실화하기 어렵다. 아무리 이상적인 시스템도 사람들에게 금욕을 강요하면 성공할 수 없다.

전기자동차는 여러 가지 기술 외적인 약점 탓에 지난 100여년간 틈새 상품에 머물러 왔고, 누가 나서서 죽인 게 아니라 아직 제대로 태어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가까워 보이는 전기자동차 외에 연료전지 자동차가 개발되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자동차에 대한 관념과 습관을 거스르지 않고 화석연료 자동차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인류가 화석연료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이동과 교통에 관한 전혀 새로운 개념이 자리를 잡을 때 전기자동차로의 전면적인 이행이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참으로 복합적이고, 어렵고, 오래 걸린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브라이튼(영국)=박상욱

서섹스대학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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