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정부는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위한 로드쇼를 벌였다.
정부는 외평채 발행이 성공할 경우 우리 경제가 위기가 아님이 증명되고 공기업 및 금융기관 해외 채권 발행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부의 예상만큼 쉽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미 국채에 1.8%포인트의 가산금리가 붙는 수준 정도를 예상하고 2%포인트 이상으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지만 투자자들은 2%포인트를 넘는 가산금리를 요구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 채권을 샀다가 평가손 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좀 더 싼 가격에 사기를 원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 12일 새벽(한국시각) 외평채 발행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외평채 발행이 어긋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이 일조를 했지만 그만큼 한국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연일 ‘널뛰기’하고 있다. 주식시장도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성태 총재도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가와 환율 등 금융시장이 워낙 밖에 노출되어 있어 한국도 앞으로 변동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이 총재의 발언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이 됐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마저 올리면 금융시장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추진이 답보상태인 것도 정부가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우려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청산계획을 발표하고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이 결정된 것도 글로벌 금융기관의 불안감을 확대시키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과 더불어 부실 금융기업 정리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글로벌 금융 기관의 추가 손실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급격한 재편으로 인해 미국 고용시장의 불안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금융시장내 자금경색 현상은 전세계 고용시장의 추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상현 CJ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미국 경기는 주택경기 장기침체, 신용경색과 이에 따른 고용시장 불안으로 인해 올 하반기 중 침체국면에 재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져 글로벌 자금시장의 경색이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신용리스크가 안정될 기미가 없다는 것도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한 전문가는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아야 이러저러한 ‘설’들도 없어지겠지만 국제 금융시장은 미국의 주택시장과 연결되어 있어 가까운 장래에 평온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국내 금융기관들의 자금조달 차질과 무역수지 적자기조 등이 달러의 수급불안을 야기해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어 연말까지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됐다.
따라서 한국 금융시장이 헤지펀드의 투기장이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금융시장 참여자의 균형잡힌 시각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위기설 등이 국제 금융시장에 전파되면서 한국이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의 관심권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위기설이 국내 경제의 취약부문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