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에 비해 글로벌화 경험이 절대적으로 앞선 해외 기업은 이미 또 한번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IT기업 IBM은 글로벌기업의 경영모델이 본사가 해외 시장의 모든 업무를 독점하던 20세기 초의 ‘국제기업’ 모델에서 20세기 후반 지역별 지사 조직을 강화하는 ‘다국적기업’을 거쳐 21세기에는 국가가 아닌 운영기능에 따라 글로벌조직을 구성하는 ‘글로벌통합기업(GIE)’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IBM의 경쟁자 HP 역시 ‘효율화’라는 절대 과제에 맞춰 글로벌 경영조직을 재구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년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IBM과 HP의 글로벌경영을 통해 역시 해외 매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 IT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봤다.
◇‘모든 나라에 동일한 IBM을 설립할 필요는 없다’=IBM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나라마다 똑같이 운영되던 조직구조 가운데 통합이 가능한 기능을 나라가 아닌 지역 단위로 재배치했다. 한때 각 지사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지사에 많은 기능이 부여됐지만 과연 모든 기능이 나라마다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
가령 재무조직을 각 지사에 모두 둘 것이 아니라 지역 거점에 이를 통합 수행하는 조직을 만든다면 중복 투자를 줄이고 잉여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샘 팔미사노 IBM 회장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 IBM 조직을 설립할 필요는 없다”며 “핵심 운영 기능을 수평적으로 통합해 최적의 위치에서 이를 수행토록 한다”고 밝힌 바 있다.
IBM은 90년대 중반 전 사적 경영혁신을 시작했고 2003년 GIE 모델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나라별로 각기 존재하던 인사·재무·조달 기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지역거점 몇 곳으로 통합했다.
이는 곧 신속한 의사결정과 효과적인 고객서비스로 이어졌다. △개별국가→하위권역→상위권역→본사로 이뤄지던 복잡한 업무체계가 통합운영팀과 통합시장팀으로 단순화됐다. 고객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서비스를 같은 품질로 받을 수 있게 돼 만족도가 높아졌다.
IBM은 GIE 도입 이후 매년 10∼12%씩 주당 순이익이 늘어나는 실적개선을 비롯해 △비용 절감 △의사결정 속도 향상 △성장시장 진출 가속화 등의 효과를 얻었다.
◇‘비용은 줄이고, 효율성은 높인다’=마크 허드 HP 회장은 지난해 미국 유력지 비즈니스위크의 ‘2007 올해의 사업가’에 선정됐다. 지난 2005년 칼리 피오리나 전 CEO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을 때만 해도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관심은 오히려 피오리나에게 향했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경제포럼 같은 국제적인 행사에서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HP 혁신에 주력했다. 이후 HP의 글로벌 경영에는 ‘효율화’라는 과제가 이름표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전 세계 170개국 31만여 직원들로 구성된 HP 글로벌조직의 효율적인 구매 프로세스 정립을 위해 확대하고 있는 ‘HP GPO(Global Procurement Operations)’다. GPO는 ‘스마트바이(SmartBuy)’로 불리는 사내 시스템을 통해 모든 구매 관련 업무 및 승인 절차, 관리 등을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제도다.
HP는 대륙별로 구매지원(PAD) 조직을 두어 중앙 집중적으로 업무를 진행함으로써 업무 효율성과 관리 용이성을 개선하고 비용 절감을 꾀했다.
아·태 지역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인도에 위치한 PAD팀을 주축으로, 아·태 지역 내 각 나라에서 진행되는 구매 관련 업무를 중앙에서 통합 관리하고 있다. 동유럽 및 중동 지역은 지난해부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PAD팀이 GPO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관리업무는 지역별 거점에서 중앙 집중식으로 처리되지만 HP의 모든 임직원은 스마트바이 온라인시스템을 이용해 주문 관련 내용 및 진행 상황을 조회할 수 있다.
이호준기자 newle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