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인재양성]세계는 지금

 세계 각국이 ‘고급 두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소수 천재급 인재가 국가·기업 간 경쟁판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 고급두뇌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면 지식기반 경제의 경쟁력 근원인 인적자원 공급이 줄어 산업과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선진국은 영재교육과 핵심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전문 경영자, 재무전문가, 문화콘텐츠 분야 등에서 고급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의 인재 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될 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키워라=미국의 영재교육은 지난 1983년 연방정부 교육위원회가 제출한 ‘교육의 위기 보고서’가 촉발했다.

 미국은 지난 83년까지 국제학력평가에서 일곱 번 꼴찌를 했고 2300만 미국 성인이 사실상 문맹이며 특히 17세 소년의 13%, 소수민족 17세 소년의 40%가 문맹이라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고교생 평균학력은 스푸트니크 충격 때보다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27년 전 스푸트니크 사태 이후 최대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지난 88년 영재교육법을 제정하고 35개주에 영재교육을 의무화했다.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는 전국의 학생을 대상으로 영재를 선발하고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유럽에서 인재 양성이 가장 잘 되는 나라로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프랑스를 꼽는다. 평등과 자유를 강조하는 프랑스가 영재교육에 가장 앞섰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특히 프랑스를 이끄는 인재들의 고향 그랑제콜 출신에 대한 대우는 유별나다. 국립 행정대학교와 국립 고등사범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로 대표되는 그랑제콜은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린다. 입학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이곳을 졸업하면 신분보장이 확실하다.

 영국도 시장원리와 경쟁력을 기치로 내걸고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80년대 신자유주의적인 대처 정부의 교육개혁이 블레어 정부까지 계승되고 있다. 핵심은 학교에 대한 차등성과급, 학교 다양화와 선택제다. 시장원리와 경쟁력 및 수월성을 기초로 89년 ‘국고운영학교’란 자율학교를 설립, 우수학생을 양성하고 있다. 국고운영학교로 지정되면 공립학교 수준의 재정지원을 받지만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학교는 독자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등록금을 책정하며 교육결과나 학생들의 학력, 재정운영 등에는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 이 결과 엘리트 지향주의, 교사의 신분 불안으로 반발을 얻기도 했지만 우수학생 양성에는 탁월과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또 영국은 지난 2002년 2월 영재 교육 개선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선안을 발표해 14세 이상 영재는 중등교육 수료시험 없이 대입 예비과정으로 월반이 가능하게 해 대학진학을 5년 이상 앞당기기도 했다.

 ◇우수 인재의 ‘흑묘백묘’론=미국의 연방정부가 영재교육에 힘을 쏟았다면 주정부와 각 대학은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무상교육을 하고 또 외국인, 심지어 불법체류자 신분이더라도 능력이 있는 학생에게는 학비를 지원한다. 지난 2006년 코넬대 입학생 수는 총 3238명으로 이 중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15.4%를 차지할 정도로 외국학생의 비중이 크다. 인재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명문대라는 게 인재 유치의 장점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학교 측이 다양한 전공 프로그램을 마련, 장학금 지급을 확대한 것도 등 학생 유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뉴저지주는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지원 제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공립대학 진학생에게는 학비 전액, 사립대학 등록생에게는 학비의 50%까지 지원한다. 뉴저지 주정부는 자체 학비융자 프로그램도 실시해 학생들에게 저리로 학자금을 대출해준다.

 이처럼 미국 대학이 인재 양성에 힘을 쏟을 수 있는 데는 다양한 기부금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은 지난해 기부금으로 사상 최고인 280억달러를 거둬들였다. 지난해 기준 하버드대학이 운용하고 있는 기부금 규모는 292억달러. 2005년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다.

 일본정부도 최근 해외 우수인력 확보에 나섰다.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을 기존 12만명에서 2020년까지 30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 1983년 나카소네 수상의 ‘유학생 10만명 계획’을 발표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이를 위해 일본정부는 유학생들에게 재류 기간 갱신 신청 등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고 심사기간을 단축해 주는 등 행정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졸업 후 일본 내 기업 취업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내 주요 30개 대학을 유학생 유치 지원대학으로 선정, 해당 학교의 영어 과정을 대폭 확충, 일본어를 할 수 없어도 영어만으로 학위 취득이 가능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동남아의 허브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인재 유치의 허브로도 통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오래전부터 인재 허브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현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재들에게 10개월만 지나면 바로 영주권을 신청하라고 초대장을 날린다. 외국인이 살기 좋고 차별 없는 ‘국제도시’ 싱가포르에 눌러 살라는 것이다. NUS 등 국립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학비의 70%가량을 장학금으로 주고 3년간 싱가포르에서 의무 근무를 하게 한다. 우수한 글로벌 인재들을 양성하고 끌어들여 인재풀을 만들고, 이 인재풀이 글로벌 기업을 불러들여 좋은 일자리를 만들면서 다시 글로벌 인재를 불러들이는 선순환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이다.

 ◇기술과 경영을 묶어라=선진국 전문인력 양성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지식과 경영지식을 함께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기술을 기술자가 경영은 경영자가라는 이분법적인 방식으로는 벤처창업 기술사업화를 성공으로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86년 국립연구위원회(NRC) 주도로 학생들에게 연구와 사업화를 동시에 수행하는 기술경영스쿨(MOT) 활성화 논의를 본격화했다. 지난 87년 MOT 도입 방안이 제시됐고 90년 이후 MOT과정 개설대학이 급속히 늘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300개 대학에서 연간 1만명 이상의 MOT 학위 취득자가 배출되고 있다. 연방 연구개발 자금을 활용해 5000여명의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을 신설해 혁신가를 양성 중이다.

 평등교육을 강조해온 일본도 대미 경쟁력 약화의 원인을 기술사업화 능력과 인재 부족으로 인식하고 MOT 프로그램 도입에 적극적이다. 지난 2002년 도후쿠대학을 시작으로 지난 2002년 18개에서 2003년 27개로 늘었다. 샤프, 캐논 등 50개 기업과 와세다, 게이오 등 30개 기업이 공동으로 기술경영 컨소시엄을 구성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경민기자 km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