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하는 대학](1)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1)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과학기술의 핵심은 인재다. 이는 산업계에 그대로 반영돼 글로벌기업의 경영 최우선 순위가 ‘인재 확보’로 귀결되고 있다. 무한한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인재는 기업에 최고의 자산이며 고부가가치 상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은 산업 발전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장려는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과학기술 인재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또 다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전자신문은 창간 26주년을 맞아 세계 유명 대학의 과학 인재 양성 노력과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의 청사진을 취재해 연속 게재함으로써 국내 공과대학의 나아갈 방향과 과학기술 교육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한다.

 ‘1등도 부족하다. 지금보다 더 훌륭한 학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실로 불리우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의 미래상은 ‘선구자’정신이다. 스스로 선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당연히 첨단기술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인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을 의무감으로 삼고 있다. 누가 뭐래도 MIT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공대다. 미국 대학순위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미래형이기도 하다.

 MIT는 매년 미국대학순위를 집계해 발표하는 US 뉴스&월드리포트가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래 한번도 1위 공대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공대에 관한한 ‘난공불락’의 1위 대학이다. 미국내 대학순위는 해마다 순위가 엎치락하곤 하지만 공대 으뜸은 수십년째 변동이 없는 것이다.

 MIT는 지난 1865년 자연과학자인 윌리암 바튼 로저스가 설립해 개교했다. 설립자인 로저스는 미국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대를 육성하고자 했는데, 특히 실용적인 학문 연구에 설립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설립자의 뜻을 받들어 MIT는 실생활과 밀접하면서 산업과 연계된 연구활동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MIT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연구체계를 갖추고 있어, 전세계 수많은 공대의 대표적인 발전 모델로 꼽힌다.

 일단 공대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인 구성원들의 실력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MIT 출신들이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향한다는 것을 노벨상 수상자수에서 알 수 있다. MIT는 무려 7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중 25명이 MIT 교수다. 세계의 다른 일류 공대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MIT는 노벨상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다.

 MIT는 US 뉴스&월드리포트가 최근 발표한 2009년 순위에서도 공대부문 최우수 대학교·대학원에 선정됐다. 세부 전공별로 보면 전자·전기통신을 비롯, 컴퓨터공학, 재료, 기계, 화학, 항공우주공학 등 대부분의 공학분야에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공대 뿐만 아니라 종합대학들과의 경쟁에서도 학부과정이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MIT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 분야가 1등은 아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카니자레스 MIT 부총장은 MIT의 미래 비전에 대해 “지금보다 더욱 훌륭한 학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갈구한다. 많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위가 아닌 분야도 1위가 될 수 있게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MIT 교수진과 학생들이 바라는 것도 지금보다는 한층 더 발전한 학교의 모습일 것이다.

 MIT에는 1008명의 교수와 10200여명의 대학생·대학원생이 수학하고 있다. 교수 1인당 학생수 비율이 10대1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학부생이 4172명, 대학원생이 6048명으로 대학원생 숫자가 훨씬 많다. 공대의 표본인 연구활동에 충실한 학교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다.

 MIT 교수들의 특징 중 하나는 10년차 이상인 베테랑급 정교수가 635명으로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캠퍼스내 1만110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들은 연구, 도서관, 행정직 등 학교지원을 위한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고 있다.

 MIT에는 자국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온 유학생들도 많은데, 전체 학생중 비중이 30%에 달한다. 현재 2883명의 유학생이 MIT를 다니고 있으며, 이중 대다수인 2489명이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MIT에서는 유학생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날아온 교수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학교 측에서 해외 교수를 적극 초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기준으로 1654명을 초청했으며 90%가 연구직으로, 10%는 강의 등을 목적으로 MIT에 왔다.

 MIT의 해외 학생·교수를 살펴보면 아시아지역이 절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낸다. 교수의 경우 43%가, 학생은 50%를 차지한다. 유럽은 교수가 38%, 학생이 26%를 차지해 MIT에서 아시아 다음의 세력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는 에너지와 환경문제로 들썩거리면서 MIT가 본격적으로 에너지 문제 해결에 나섰다. 첨단으로 무장한 그린에너지의 기술을 누구보다 빨리,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발하기 위해 개발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다시한번 상아탑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카니자레스 MIT 부총장은 이에 대해 “MIT는 최고의 공대로서 전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와 사명감이 있다”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캠퍼스 전체가 이를 위한 연구과 교육활동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IT는 단순히 기술·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 접근하고 있다.

 MIT는 이공계 대학답게 신기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료분야는 물론 생명과학과 다른 공학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나노분야에서 과학적으로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다.

 카니자레스 MIT 부총장은 “지금까지 MIT가 물리적인 과학을 통해 발전해왔다면, 앞으로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고 해결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 연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응용과학 분야에서도 앞서가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든든한 기초를 중심으로 한 세계 1위 공대의 수성, 첨단기술 개발을 통한 사회 기여의 사명감, 그린 에너지 개발을 통한 새시대 부응이 MIT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이다.

  설성인기자 siseol@

◆연구활동

"1년에 연구비로만 6억달러를 쓴다"

 MIT는 2007년 회계연도에 연구비로 5억9830만달러를 썼다. 우리 돈으로 6700억원이 넘는데, 한 학교가 사용한다고 생각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렇다면 이 자금을 어디서 끌어왔을지가 궁금해진다. 정답은 연방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MIT는 사립학교지만 국가에서 많은 연구비를 조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 부처별로 조달한 금액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에서 2억160만달러를, 국방부에서 9060만달러를 유치했다. 에너지부에서 6490만달러를, 국가과학재단에서 6510만달러를 받았다.

 MIT는 이 돈으로 교수를 제외한 3500명의 연구원을 추가로 고용했다. 한국 IT 대기업 중에 이보다 많은 인원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하는 곳은 삼성전자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공대에서 막강한 자금력은 성과와 직결된다. 2006년 통계를 살펴보면 MIT 교수와 연구원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화려하다. 487건의 발명과 314건의 특허출원을 기록했다. 특히, 로열티와 부수입으로 무려 1억292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투자한만큼 돌아온다’는 원칙이 대학에서도 증명되는 단적인 사례다.

 과거 MIT가 산출한 분야별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세계 이공학사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분야에서는 레이더, 싱글 전자 트랜지스터가 MIT의 연구원 손에서 나왔다. 헤럴드 유진 에드거튼은 고속 포토그래피의 개척자이며, 클라우드 샤논은 현대 정보이론을 개발했고, 디지털회로설계 이론을 발견했다.

 무료소프트웨어 운동도 MIT의 컴퓨터과학이 시발점이 됐다. 인공지능, 컴퓨터 언어, 기계어, 로봇틱스, 공중키암호해독법 같은 첨단기술들도 MIT의 대표적인 연구결과물이다. MIT의 데이비드 클락은 인터넷 아키텍쳐와 프로토콜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X윈도우 시스템도 MIT에서 탄생했다.

 물리학에서는 양자계 이론, 수퍼 중력, 쿼크 모델, 핵구조, 양자광학 등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현대물리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이론들이다. 화학부에서는 복분해 같은 수합성을 발견했으며, 페니실린은 MIT에서 최초로 합성됐다. MIT의 생물학자들의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RNA, 단백질합성 등을 발견했으며,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학자중 한 사람인 에릭 랜더도 MIT 출신이다.

 공학 뿐만 아니라 인문계에서도 MIT는 상당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경제경영학부 소속 교수·연구진들은 금융공학, 복지 경제학 등에 기여했으며,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도 MIT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자다.

◆스타 동문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여, 세계를 호령하라.’

 MIT 졸업생은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 세계 이공계 최고 대학답게 UN 사무총장부터 IT업계 영웅들까지 수많은 스타 동문 군단을 자랑한다.

 우선 지도자 중에는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이 MIT 출신이다. 반기문 사무총장 직전에 10년간 UN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그는 MIT 슬론경영스쿨 출신이다. 말 한마디에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계 슈퍼파워맨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MIT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IT업계 영웅 중에도 MIT 동문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데이비드 패커드와 함께 HP를 공동 창업한 윌리엄 휼렛은 MIT에서 전자전기컴퓨터 석사를 받았다. 반도체 대표기업 중 하나인 TI의 창업자 세실 하워드 그린도 MIT에서 전기공학 학·석사를 마쳤다. 세계 최고의 팹리스기업인 퀄컴의 회장 어윈 제이콥스는 MIT에서 전자정보공학 석·박사를 받은 후 MIT 전기공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동양인 CEO 중에 MIT 동문으로 눈에 띄는 인물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TSMC의 회장 모리스 창이다. 그는 MIT에서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수 중에는 ‘100달러 노트북PC’로 유명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연구소장이 있다. 그는 MIT에서 건축학 학·석·박사를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카이스트에 외국인 총장으로서 화제를 모았던 로버트 러플린도 MIT에서 물리학 석·박사를 받고 지난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MIT 동문들의 막강한 파워를 체감할 수 있다. 우선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들 중 배순훈 카이스트 부총장이 꼽힌다. 서남표 현 카이스트 총장은 MIT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MIT에서 30년 넘게 기계공학과 교수로 몸담았다.

 기업인 중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MIT 슬론스쿨 출신이며 백우현 LG전자 CTO도 MIT에서 통신공학 박사를 받았다. 윤송이 전 SK텔레콤 상무도 MIT 미디어랩 박사로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이해승 MIT 교수가 본 MIT

 “MIT 교수들의 강의철학은 학생들이 오직 30%만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해승 MIT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세계 일류공대의 교수법을 이 같이 설명했다. 교수들이 강의 준비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면서 학생들을 강하게 단련한다는 것이다.

 그는 “MIT의 강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학생들에게 많은 양의 숙제를 부여한다”면서 “학생들도 이 방식을 즐겨, 강의속도가 느리고 숙제가 적을수록 교수들에게 불만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학생들의 약점을 벗겨내고 강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MIT 교수의 의무라면서, 다른 어떤 학교들보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한 것이 MIT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MIT가 세계 최고수준 공대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력을 교수·학생·시설이라고 답했다. “우수한 교수진과 시설은 우수한 학생을 불러들이고, 뛰어난 교수는 뛰어난 학생을 바라보고 MIT의 교수가 되고자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자금지원도 필수적이라면서 MIT가 리더로서 열심히 뛰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학교 차원에서 교수들이 산업계에 기술적 컨설팅을 하는 것을 장려한다”면서 “이는 산업적 경험을 중요시 하기 때문이라며,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이 같은 활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MIT의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검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MIT에서는 이미 성과를 낸 교수보다는 잠재력이 있는 젊은 교수를 선호한다”면서 “전기컴퓨터공학부의 경우 교수 한자리를 놓고 수백명의 지원서를 받는다”고 했다. MIT에서는 매년 학부장이 의장이 되어 교수선발위원회를 꾸리고, 어떤 학부에 새교수가 필요한지 결정하고 지원절차를 진행한다.

 MIT에서는 교수들의 진급도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이해승 교수는 “외부 추천서가 교수 승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이는 객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자금 유치와 논문수는 승진에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학교가 연구의 양보다는 질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MIT에서 정년을 보장받고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역에서 국제적으로 최고의 교수가 되어야한다”면서 “임용 후 12년이 지나면 정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날로그 및 혼합신호 IC 연구에 집중하면서 아날로그-디지털 컨버터(ADC), 디지털-아날로그 컨버터(DAC)의 대가로 이름이 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