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특별인터뷰] 토마스 데이븐포트 교수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

 ‘환상적인 제조업 실력을 발휘해 글로벌 수출국으로 급성장한 나라’ ‘오늘날 모든 형태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해볼 수 있는 전 세계 최대의 실험실’ ‘그러나 지식 기반 리더십의 부재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 세계 3대 경영전략 애널리스트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인 토머스 데이븐포트 밥슨칼리지 교수(54)가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던지는 쓴소리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평소 현대인이 직면한 정보 홍수 문제를 “뉴욕타임스의 일요판에 담긴 정보가 15세기에 쓰인 모든 문서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정확한 분석을 통해 가치 있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기업 경영인들에게는 ‘지식 기반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분석하고 사실 기반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 뭄바이에서 열린 한 경영자 포럼에서 만난 데이븐포트 교수는 묵직한 배낭을 메고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guru·정신적 지주)이자 ‘세계 25대 컨설턴트’로 꼽히는 그의 이력에 걸맞게 가방 속에는 비즈니스 관련 서적과 서류가 빼곡했다.

 그가 최근 흥미롭게 읽은 잡지 한 권을 건넨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실린 ‘수학이 당신의 삶을 뒤흔들 것이다(Math will rock your world)’라는 기사다. IBM이 분석학을 활용해 직원들을 관리하는 노하우를 소개한 글이다.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분석’을 강조해온 데이븐포트 교수는 “나의 일관적인 관심사는 현대인이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에 대한 것”이라며 “대표적인 저서 ‘관심의 경제학’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모든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한계에서부터 접근한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은 디지털 지식의 보고=그가 말하는 분석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보 과잉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경영자는 분석하고 또 분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분석 기술을 도입해 성공한 기업의 사례로 그가 자주 언급하는 식품 유통 체인 ‘태스코’ 역시 ‘클럽카드’라는 프로그램을 도입, 철저한 고객 분석으로 영국 1위의 식품 유통 기업이자 세계 최대 인터넷 식품 상점으로 거듭났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카지노 업체인 하라스(Harrah’s)는 분석 시스템을 구축한 뒤 7년 만에 주가가 700%나 뛰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며 “매리어트 호텔은 매출관리분석 시스템 덕분에 타 경쟁 호텔에 비해 평균 매출이 7% 높다”고 소개했다.

 분석 경제학의 거장인 그의 관점에서 한국은 특별한 연구 대상이자 ‘관심’의 촉수를 뻗칠 수밖에 없는 나라다.

 평소 그는 “한국은 다양한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실험실”이라고 정의했다. “세계 최대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휴대폰 사용자를 보유한만큼 한국은 디지털 지식의 보고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미래상이다.

하지만 데이븐포트 교수가 IT 최강국 한국의 화려한 발전상만을 주목한 것은 아니다.

 ◇“BI시스템 도입 생각보다 적어’=분석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충분한 양의 데이터 축적’과 ‘사실 기반 의사 결정’을 두 가지 핵심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불행히도 국내 경영자들에게는 이 두 가지 덕목이 모두 결핍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만난 한국의 경영자들 중 분석학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사업 계획을 이행하기 전에 테스트해보고 모델링하려는 시도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기업 중에 분석학이나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 기대보다 적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글로벌 제조 시장에서 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중국에 패배하지 않으려면 ‘지식(knowledge)’을 무기로 제품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수년 전 삼성전자의 ERP 시스템 도입 업무에 관여했던 데이븐포트 교수는 “다만 한국은 삼성전자나 포스코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ERP 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한 기업이 적지 않고 이를 실제 경영과 관리에 적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기대 섞인 평가도 잊지 않았다. 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휴대폰 시장도 분석학과 접목시킬 수 있는 그의 관심 영역이다.

 ◇효율적 의사결정이 위기의 시대 돌파구=“대부분의 한국인은 24시간 휴대폰을 끼고 산다”며 “MIT의 한 교수는 한국인이 휴대폰에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들이 어떻게 소비자를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 데이터를 오프라인에 비해 쉽게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웹 분석학도 유사한 맥락에서 그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연구 과제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리스크 분석(risk analytics)’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는 “대다수 기업이 경제 위기에 직면해 시장 예측을 위한 분석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 분야에서 분석학은 부정 행위 방지는 물론이고 고객 관계 관리, 마케팅 방향 결정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관심의 경제학’과 ‘데이터로 경쟁우위 만들기(Competing on Analytics:The new science of winning)’에 이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그의 다음 저서가 궁금했다. 그는 “아마도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론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그는 IBM과 의사 결정 관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는 “대형 은행들이 대출 업무와 관련해 적절치 못한 결정을 내리지만 않았더라도 이처럼 심각한 글로벌 신용 위기는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삶 속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것인지 좀 더 공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경제 불황의 시대, 위기에 봉착한 기업인들에게 던지는 그의 충고다.

◆관심의 경제학은 어떤 책인가

 지난 2001년 하버드경영대학원 출판부에서 출간한 ‘관심의 경제학(The Attention Economy)’은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과 미국 3대 서점인 보더스(borders)가 선정한 ‘2001년 베스트 도서’ 10선에 이름을 올리면서 단숨에 경제경영 리더들의 필독서가 됐다. 2002년에는 ‘라이브러리 저널’이 뽑은 ‘2002년 베스트 비즈니스 도서’ 1위를 차지하면서 명성을 재확인했다.

 유명 석학들이 집필한 경제 경영 서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이 책이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관심’을 화두로 현대 사회의 경제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적절한 처방전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심도 있게 주목하지 않았던 ‘관심’이라는 렌즈로 정보 과잉 시대를 헤쳐나갈 명쾌한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 토머스 데이븐포트는 과거 생산의 3요소가 토지·자본·노동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무형의 요소가 이를 대신하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관심(attention)’이라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디지털 혁명과 유비쿼터스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해답은 고객들로부터 관심을 획득하고 이를 관리하는 데 있다는 것. 제너럴일렉트릭(GE)·제너럴모터스(GM)·아마존닷컴·삼성·소니 등 유수 기업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경제 경영의 문외한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1954년 미국에서 태어난 데이븐포트는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석·박사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경영학에 접목시킨 연구로 주목받아온 그는 피터 드러커·톰 프리드먼과 함께 지난 2005년 옵티마이즈매거진이 선정하는 ‘세계 3대 경영전략 애널리스트’로 뽑혔다. 피터 드러커·마이클 포터 등 1세대 경영학 대가(guru)에 이어 톰 프리드먼·톰 피터스와 함께 2세대 경영학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로 인정받고 있다.

 2001년 ‘올해의 30대 베스트 경영서적’에 선정된 ‘관심의 경제학(The Attention Economy)’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Working Knowledge’ ‘Competing on Analytics:The New Science of Winning’ 등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대다수 경영학의 대가들이 강연과 저술활동에 주력하는 반면에 데이븐포트는 앤더슨컨설팅·매킨지앤드컴퍼니·언스트&영 등 주요 컨설팅 기관에서 IBM·GE 등 유수 기업의 자문을 담당하면서 경영전략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밥슨칼리지에서 정보기술과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공 분야인 프로세스 혁신과 지식경영에 걸쳐 다양한 저서를 집필, 출간하고 있다.

뭄바이(인도)=김유경기자 yu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