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터넷-글로벌 웹2.0 현장]프랑스 - 논쟁의 중심을 옮기다

60%에도 못 미치는 낮은 인터넷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블로그를 통한 사회 참여가 활발하다
60%에도 못 미치는 낮은 인터넷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블로그를 통한 사회 참여가 활발하다

지난해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자들은 앞다퉈 세컨드라이프에 가상의 선거캠프를 차렸다. 블로그를 개설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 의견을 수렴한 것은 물론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던 풍경이다. 브이그 그룹 건설파트에서 일하는 서니(23)는 “TV에 비해 후보자의 공약이나 비전을 훨씬 더 충실히 알 수 있어 선거 기간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봤다”며 “유권자들이 올린 글 역시 후보자의 생각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2002년 대통령 선거가 그랬듯이 2007년 프랑스 대선은 인터넷을 이용한 정치 참여를 촉발시켰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인터넷은 당선자 사르코지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대항마 루아얄을 만들어냈다. 선거 이후 프랑스 곳곳에는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보급률이 아직 인구의 절반에 불과하고, 우리나라가 5년 전에 겪은 변화를 프랑스는 이제야 체험하고 있지만 내용만큼은 풍부하다.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프랑스인의 특성이 개방과 공유라는 웹2.0 트렌드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인터넷상에서 가장 풍성한 정치참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토론의 장을 인터넷으로 옮기다=프랑스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가 큰 인기다. 프랑스 컨설팅 업체인 지텍스의 장 뤽 페트 부사장은 “전 세계 블로거의 3분의 1이 프랑스인이라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프랑스의 블로그 이용 문화는 강력하다”고 강조한다. 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블로그 공동체인 ‘프리맨(Freeman)’. 프리맨은 생태주의와 개발지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70여개의 블로그가 의견을 하나로 묶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 지난 대선 때는 대안 세계화 운동가인 조제프 보베를 지지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사이버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사이버 액터스(cyber@cteurs)’도 토론과 정치참여에 익숙한 프랑스 네티즌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곳이다. 이 사이트는 평화, 인권, 반세계화 운동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 등 200개가 넘는 다양한 분야에서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인다. 인터넷상의 서명운동 결과는 해당 분야의 정책 결정권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만큼 강력하다.

◇더디기만 한 인프라, 날개 단 참여문화=최근 닐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내 인터넷 보급률은 60%에도 못 미친다(58.1%). 90%를 넘어서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비율이다. 파리 시내 공원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무선 인터넷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초고속인터넷을 ADSL로 인식할 정도로 인프라가 낙후돼 있다. 그러나 네티즌의 인터넷 이용 문화는 풍부하고 성숙하다. 10∼20대가 인터넷 이용자의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40∼50대가 활발하게 참여를 한다. 네티즌의 20%가 50대다. 인구의 e메일, 온라인 쇼핑 등은 물론이고 블로그나 SNS 등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노령 사회인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50대 이상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인터넷 변화를 특정 연령대가 아닌 사회 전체가 고르게 받아들이는 안정적인 수용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파리시내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베르랑(52)은 “호텔 예약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이후 인터넷 뉴스를 신문보다 더 자주 본다”며 “뉴스에 달린 다른 네티즌의 의견도 읽을 거리”라고 말했다.

◇토론·참여 특성 내세운 웹2.0 서비스 인기=인터넷 보급률이 낮다고 웹2.0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오히려 신생 웹2.0 기업의 성장이 돋보인다. 25개에 이르는 프랑스 벤처캐피털이 2005년 이후 신생 웹2.0 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데일리모션, 스카이록, 넷위브, 데저닷컴, 위즈고 같은 서비스가 줄줄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개방과 공유의 웹2.0 철학은 토론과 참여에 적극적인 프랑스 네티즌의 성향과 맞아떨어진다. 데일리모션은 이용자가 직접 만든 동영상을 공유하는 사이트며 스카이록은 요즘 잘나가는 블로그 서비스다. 타릭 크림이 세운 넷위브는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인터넷 초기화면을 꾸미도록 한 위젯 서비스로 대표적인 웹2.0 서비스다. 2005년 설립 이후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영국 런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프랑스 웹2.0 기업들은 서비스 초기부터 자국과 벨기에, 스위스 등 프랑스 언어권은 물론이고 공유하는 다른 국가 이용자까지 포괄해 글로벌 서비스로 도약하고 있다. 프랑스 기업가 제롬 아크함보드는 “프랑스의 웹2.0 물결은 브로드밴드의 확산(동영상 등)과 프랑스인의 문화적 성향(블로그 등)을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프랑스)=이수운기자,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