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본 잡지 에이리어(AREA)에는 ‘웹2.0에서 일한다. 재능을 살리는 기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 인터넷 기업이 채용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 세 가지를 △개발합숙 △평일 1일 휴가 △재미 지상주의로 규정한 것이 화제가 됐다. 개발합숙이야 일본의 오타쿠(마니아) 문화와 맥락이 닿는다고 쳐도 평일 1일 휴가와 재미 지상주의는 뭔가 일본 기업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일본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독한 ‘일벌레’가 아니던가.
그러나 일본은 적어도 인터넷 분야에서만큼은 철저히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한다. 게임 개발사인 일본의 페퍼보이는 면접 시 재미가 없으면 직원을 뽑지 않는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직원이 즐거워야만 재미있는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모바일 소설로 1위를 달리는 카코스타츠는 소설로만 한 해 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모바일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주겠다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웹2.0 기업인 하테나는 매일 매일 자리를 바꿔앉는 프리 어드레스, 직원간 평가에 의해 보너스가 결정되는 페이지랭킹 등 기발한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회의 시간에는 늘 활기가 넘친다.
현지 취재한 일본의 웹 2.0 트렌드는 즐거움(Joy)이다. 굳이 게임·음악 등의 엔터테인먼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니아가 많은 일본에서는 조그만 관심사조차도 풍부한 서비스로 반영되는 포괄적인 즐거움이 있다.
◇즐거운 상상이 실현되는 소셜 서비스=현재 일본 인터넷 시장은 상상(想像)이 드리워진 소셜 네트워크로 꽉 차 있다. 현재 일본에서 주목도가 높은 제 3세대 인터넷 기업 중 선두그룹들은 모두 소셜 블로그, 소셜 북마크, 소셜 동영상 등과 같은 사회(social)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블로그와 지식인(검색)으로 유명한 하테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1000만 유저를 확보한 믹시, 일본 최초 개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오픈한 그리(GREE), 유튜브를 넘어서는 동영상 사이트를 꿈꾸는 니완고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일본에서 소셜 네트워크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가 즐거움을 느끼는 모든 조합이 웹상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네티즌은 상상하면 그만이다. 인터넷 기업은 그런 소비자의 상상에 파도를 탄다. 상사에게 칭찬받는 법은 그리에서 물어보면 되고, 대학에서 A학점 받는 비결은 하테나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하테나의 모든 서비스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돼 구글, 야후 재팬, 라쿠텐, 아마존 등의 포털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다.
◇ 즐겨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현재 일본 인터넷 업계는 나나로쿠 세대(7과 6, 즉 1976년 전후에 태어난 벤처기업인)’가 주류로 부상 중이다. 기존 일본 주류세력은 인터넷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인식까지 있었으나 이들은 즐거움과 활기로 무장해 인터넷2.0 시장을 주도한다. 하테나의 곤도 사장이나 니완고의 세이지 사장 등은 그 중심에 있다.
자유 분방한 이들은 오픈소스 솔루션을 적극 활용하며 변화를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하테나는 회의 내용을 모두 녹음한다. 앞으로 음성 검색이 시작되면 회의 자료가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는 곤도 사장의 예측 때문이다. 이 같은 개방적인 시각은 생동감 있는 서비스와 역동적인 사용자 그룹을 형성한다. 젊은 여성은 믹시, IT에 관심이 많은 젊은 남성은 하테나, 오타쿠들은 2채널, 게임을 좋아하는 10대들은 모바게타운 등 저마다 애호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모바일 SNS를 하는 데나의 경우 ‘게임과 채팅’이 결합된 새로운 서비스 하나 만으로 네티즌 4명 중 1명을 사용자로 끌어 들였다.
이런 노력 끝에 돌아오는 성과도 달콤하다. 일본 후지쯔 총연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웹 2.0 기업은 설립 후 3년에 평균 2억2400만엔의 자금 조달에 성공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일반 기업이 평균 1억4000만엔의 돈을 끌어들인 것에 비하면 탁월한 성과다. 오창렬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일본 사무소 수석은 “일본 인터넷 시장은 틈새분야라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일정 수준의 이용자 확보가 가능한 좋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도쿄(일본)=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