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 대표적인 통계분석 솔루션 업체인 SAS가 개최한 경영자 포럼장이 돌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진행을 맡은 인도의 인기 토크쇼 진행자 데릭 오브리엥의 목소리도 흥분으로 가득찼다.
“잭 웰치 GE 회장과 빌 게이츠 MS 회장의 베스트셀러는 25개 언어로 6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기조 강연자의 책은 무려 전 세계 41개 언어로 번역돼 100여개 국가에서 출간됐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베스트셀러 ‘블루오션전략(Blue Ocean Strategy)’의 저자 르네 마보안 교수가 소개되는 순간이었다.
책이 출간된 지 벌써 4년이 흘렀지만 기업 경영자들이 ‘블루오션’에 쏟는 관심과 기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레드오션’이 심화되는 현 시점에서 블루오션 전략은 더 이상 ‘추상적 개념(concept)’에 머물지 않고 기업인들에게 ‘내재된 마인드(mental mind)’로 자리 매김했다.
영어권 외 국가 중 ‘블루오션전략’이 가장 많이 팔린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지난 2005년부터 대부분의 기업들이 작성한 차기 연도 사업계획서에는 ‘블루오션’이라는 용어가 어디에나 등장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에게 ‘블루오션’의 정의를 물으면 누구나 주저없이 대답한다. ‘경쟁이 없는 새로운 성장 분야’라고. 하지만 이 답안지를 르네 마보안 교수에게 제출한다면 썩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답도 아니기 때문이다.
◇블루오션은 ‘틈새(Niche)’가 아니다=간간히 쉰 목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열정적인 강연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에서 마주한 그는 경영자들이 종종 틈새시장과 블루오션을 혼동한다고 지적했다.
“니치마켓은 아무도 진출하지 않았던 좁은 영역의 신규 시장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틈새시장이 시장을 분할하는 개념(segmentation)이라면 블루오션은 차별화된 상품으로 시장을 쪼개는 방식(de-segmentation)을 통해 큰 시장, 즉 ‘넓은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이 좋은 예라고 그는 설명했다. 반짝 유행에 그치는 패션 대신보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채택함으로써 이른바 ‘유행을 타지 않는 하이패션’을 창조해낸 것이다.
마보안 교수는 이날 기조 강연에서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기 ‘위’를 블루오션을 개척한 최신 성공 사례로 들었다. ‘위’가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했던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중·장년층 등 기존 비사용자를 흡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블루오션은 ‘트렌드’가 아니다=블루오션이 한때 유행처럼 몰아치는 경영 트렌드가 아니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18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은 항상 존재했다”며 “전 세계적인 산업 흐름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시대에 맞게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블루오션’에 이어 ‘그린오션’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 역시 ‘블루오션’의 이론을 기반으로 상업적인 성공에 이르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들이 경쟁자가 우글거리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드넓은 푸른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기업이 하나의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10∼15년이 지나 레드오션이 되면 또 블루오션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 “어떤 산업 분야에서든 하나의 블루오션만이 유일한 돌파구는 아닙니다. 다수의 블루오션 가능성이 늘 상존하는 것이지요.”
◇블루오션은 ‘단답식’이 아니다=한국 기업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마보안 교수는 기자가 건넨 명함을 한국말로 읽어 내려가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블루오션전략의 공동 저자 김위찬 교수와의 인연을 계기로 한국어와 서예, 한자까지 익힐 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다. 한국을 잘 알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약점도 꿰뚫고 있다.
마보안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은 우수한 기업을 만들어내는 비법이 아니라 전략적 행동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암기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성급한 대답을 원할 뿐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하곤 한다”고 비판했다. “블루오션에 더욱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분석학이 필요하다”는 그는 “대다수 사람이 혁신을 운이라고 여기지만 블루오션은 확실히 기틀을 다지고 체계적인 툴을 활용함으로써 창출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블루오션은 ‘내재된 마인드’다=블루오션에 대한 인기가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지만 전 세계 독자들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보안 교수는 “몇 년 전부터 줄곧 받아온 질문”이라며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직도 블루오션 연구를 진행 중이며 특히 이 전략을 문화가 다른 세계 각국에 어떻게 스며들게 할 것인지가 늘 흥미롭다”고 귀띔했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를 명시했지만 사실 ‘블루오션’은 전략이 아니라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방식에 대한 것, 즉 정신적인 영역(mental)의 이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종종 한계에 직면하곤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사업 영역과 사회, 문화간에 차이점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보안 교수는 동료인 김위찬 교수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설립한 ‘블루오션전략연구소’를 소개하면서 “블루오션 전략을 인간의 행복을 다루는 다양한 사회 영역에 접목시키는 것이 다음 과제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블루오션전략은 어떤 책인가?
△‘블루오션 전략’은 어떤 책인가=지난 2005년 초, 당시 정보통신부를 이끌었던 진대제 전 장관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원서 한 권이 정통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진 전 장관이 이 책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청와대의 극찬이 이어졌고 정통부가 이를 번역해 전 직원에게 나눠주면서 화제가 됐다. 국내에 정식 출간되기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 책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출판사 역사상 최다 언어권(41개 언어)에서 번역 계약이 체결된 이 책은 국내에서도 메가톤급 위력으로 서점가를 강타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2005년 최고의 히트상품’부터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한 ‘2005 최고의 번역 출판물’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미답의 시장 영역의 창출과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전략’이라는 부재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말하는 ‘블루오션’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수요를 창출하고 고수익 성장기회를 노리는 ‘푸른 바다’로 정의된다. 반면에 이에 반대되는 개념인 ‘레드오션’은 산업의 경계가 분명하고 경쟁 게임의 규칙이 알려져 있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흘린 피로 ‘붉게 물든 바다’다.
기업이 블루오션을 발굴하고 레드오션을 피하기 위해서는 ‘에릭(ERIC)’이라는 4단계 법칙을 통해 제거(Eliminate)·감소(Reduce)·증가(Increase)·창출(Create)해야 할 요소를 분명히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뭄바이(인도)=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교수는=르네 마보안 교수는 유럽 1위의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전략 및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교수’라는 직함보다 전 세계적인 히트 저서 ‘블루오션전략’의 저자로 명성을 얻은 그는 국제 경영학계에서 하버드대의 마이클 포터(경쟁전략론)와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게리하멜(핵심역량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 월간지 ‘렉스팡시옹(Lexpansion)’은 지난 2004년 말 ‘세계 경영 구루(guru·정신적 지주)’ 50명을 소개하면서 르네 마보안 교수와 ‘블루오션전략’의 공동저자 김위찬 교수를 공동 1위로 선정했다.
마보안 교수는 다보스포럼에서 펠로(fellow)를 맡아 세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블루오션 전략을 전파해왔으며 백악관 경제정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지난 80년대 초반 미국 미시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김위찬 교수와 인연을 맺은 뒤 90년대 중반 프랑스 인시아드로 함께 건너가 가치혁신이론과 블루오션 전략을 창시했다. 평소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김 교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한국에 감사한다. 김 교수와 나는 노송(老松)과 버섯 같은 관계”라며 학문적 동지로서의 신뢰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