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의 스탠퍼드대학 인근. 라몬다 스트리트 538 번지에 위치한 ‘쿠파 카페(Coupa Cafe)’는 주변에서 꽤 알려진 명소다. 질 좋은 베네수엘라 커피와 맛있는 초콜릿이 신문이나 잡지에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다. 클레어 장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실리콘밸리센터 디렉터는 “투자자를 찾는 벤처 기업가와 가능성 있는 투자처를 찾는 벤처캐피털리스트(VC)가 자주 만나는 곳이어서 더욱 유명하다”고 귀띔한다.
지난 6월 13일 방문한 쿠파 카페는 오전 열시가 갓 지났는데도 노트북을 펼치고 무언가를 논의하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좋은 아이템이나 기술에 자금을 마련해 주고 그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VC가 아주 많아요. VC는 실리콘밸리에서 아이디어 벤처가 계속 나와 시장을 만들 수 있게 하는 탄탄한 토양 중 하나지요.”
VC와 벤처의 하모니가 시장을 만드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벤처가 기술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면 VC가 이를 평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준다. 최근 전체 VC의 투자규모가 줄긴 했지만 유독 인터넷 분야만큼은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에 대한 VC의 애정도 식을 줄을 모른다. 미국의 웹 2.0 트렌드가 기술이나 사회적 변화가 아닌 VC 주도의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 VC 투자 감소속 인터넷은 증가=물론 미국 VC의 전체 투자 규모는 다소 줄었다. 지난해 4분기 78억달러에서 2008년 1분기 75억달러, 2분기 74억달러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비중이 늘어난 분야가 있다. 바로 인터넷 업종이다. 지난 2분기 미국 전체 인터넷(Internet-specific) 분야 투자는 15억3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무려 5억달러나 늘었다.
투자규모도 중요하지만 VC들이 인터넷에 다시 높은 관심을 갖게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VC는 새 시장을 만들고 성장할 수 있는 각종 사업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주기 때문이다. 이 지역 VC인 알토스벤처스의 김한 파트너는 “VC는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보와 인맥을 활용해서 필요한 모든 걸 마련해 주고 적절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고 말했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BM)에 기술이 부족하면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나 인물을, BM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수정할 수 있도록 투자자 자격으로 조언하거나 적절한 인물을 추천한다. 미국 인터넷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자양분이 바로 VC다.
◇투자의 핵은 인터넷 소셜 기업=최근 실리콘밸리 VC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업에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투자유치에 성공해 주몯받은 슬라이드(Slide.com), 락유(Rockyou.com), 소셜텍스트(SocialText), 위키스페이스(Wikispace) 등은 모두 사용자간 관계망을 이어주는 소셜 기업이다. VC의 투자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소셜 기업의 잠재성을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2005년 창업한 SNS용 위젯(Widget) 기업인 슬라이드는 이미 올해 초에 5000만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락유도 SNS용 위젯 기업이지만 사진과 이미지 자료용 위젯에 그치지 않고 동영상, 게임 등 다양한 위젯을 선보여 지난 6월까지 확보한 투자자금이 4000만달러를 넘는다. 이 두 기업은 웹 2.0 대표주자로 향후 성공 여부가 인터넷 업계는 물론이고 VC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벤처 선순환구조 만드는 VC 시스템=미국의 향후 웹 트렌드가 VC의 활약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미국은 VC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가가 실패했을 때 투자금 회수 책임은 철저히 투자자가 진다.
기업가는 실패해도 다음 번 아이디어와 BM을 가다듬어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다시 VC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각종 연대보증 등으로 ‘기업 실패’가 ‘인생 실패’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웹 2.0 투자의 효과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도 이 같은 투자 시스템은 실패 이후 또 다른 성공을 견인하는 요인이 된다. 미국에서 SK텔레콤의 인터넷 사업을 총괄하는 유현오 사장도 “기업가가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는 게 이곳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최순욱기자 choi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