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터지는 미국발 금융위기설과 수그러들 줄 모르는 환율 상승까지 악재가 겹겹이 쌓이는 요즘, 본사와 약속한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다국적 IT기업 지사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국내 시장에서 나란히 연 1조원대 매출을 올리며 맞수로 성장해온 한국HP와 한국IBM의 수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공식석상에서 사업비전을 발표한 두 CEO는 이런 상황일수록 새로운 투자를 통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국내 기업고객의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투자는 도박이 아니다”=최준근 한국HP 사장은 최근 열린 ‘HP 비즈니스테크놀로지(BT)@WORK 2008’에서 만난 기자에게 ‘18%’라는 수치를 꺼내들었다. 환율급등으로 인해 분기당 매출 18%를 더 올려야 1년 전 정해놓은 달러 기준 실적목표를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 사장은 이 같은 악재가 회사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그는 “국내 기업은 경기가 안 좋으면 비용절감에만 관심을 갖지만 해외 선진기업은 오히려 향후 찾아올 호황을 대비해 투자를 늘린다”며 국내 기업의 투자위축을 경계했다.
“HP 역시 경기침체 속에서도 연구개발 및 프로세스 개선 등 역량 강화에 힘쓴다. 불황 속 투자를 ‘도박’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이때 CEO의 과감한 투자 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IT의 역할”이라고 최 사장은 강조했다. 이어 그는 “BT 서비스로 미래형 IT환경을 제공해 기업고객과 ‘윈윈’하겠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투자가 경쟁력이다”=최근 ‘IBM 클라우드컴퓨팅센터’ 개소식에서 이휘성 한국IBM 사장은 ‘새 플랫폼’을 강조했다. 현 상황에서 IT를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으로 이어나가려면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과거 집중화된 환경과 달리 모든 것이 개방된 지금은 기업이나 개인이 독자적으로 기술을 소유할 수 없다”며 “개방된 것을 통합하고 표준화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컴퓨팅모델은 클라우드컴퓨팅. 이 사장은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IT강국을 넘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뉴엔터프라이즈데이터센터 등을 클라우드 형태로 연동시키면 새 컴퓨팅 모델이 실현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IBM의 비즈니스가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지난 2005년 PC사업부를 레노버에 넘긴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IBM은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