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재를 다듬어 미래 과학기술의 첨단 일꾼을 길러낸다.’
파리공대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파리테크(ParisTech·www.paristech.org). 프랑스의 대표적 상징물인 에펠탑을 정점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파리 지역 안에서 가장 우수한 12개 이공계 대학교를 한데 모아 지난 1991년 세워진 연합체적 성격의 교육기관이다. 과학과 공학 그리고 경영관리 등 분야까지 아우르는 연구 성과와 우수 인재의 메카로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우수 인재로 가득한 파리테크는 프랑스 경제·과학·정치 분야의 엘리트로 성장하기 위한 등용문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심도 있는 교육과 유기적 산·학협력이 융합된 입체적 교육 모델로 세계 과학기술 교육의 새로운 전형이 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론과 실제가 밀착된 교육체계=파리테크의 교육 시스템은 단순히 기술 개발과 연구 개발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소속 학교들은 치밀한 공학 교육과 구체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 진출 시에도 반드시 필요한 경영관리 역량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하며 다른 연구 중심 대학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파리테크는 기업들과 오랜 협력 관계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기업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이 교육에 참여하는 동시에 학생들도 기업 연수를 거쳐 현장의 요구와 현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양자 간 협력은 기업이 학교 지도부에까지 참여할 정도로 견고하다.
우선 교과 원리 범위 내에서 기본 지식에 주안점을 둔 교육이 제공된다. 특히 현대 공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인 수학과 정보기술(IT) 교육에서 탁월한 강점을 자랑한다. 이 과목들은 일반공통에 속하지만 이 과정을 마치면 심화과정에서 전공으로 다룰 수 있다.
또 여러 영역에 걸친 교육과 실무기술 과정을 거친 엔지니어(학생)들이 조직 지휘·동기 부여·커뮤니케이션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경제·경영·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개방된 교육을 실시한다.
교수진도 정규 교수·연구원뿐만 아니라 실무 현장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현장 인력들까지 가세해 구성된다. 교육방식 역시 강의와 함께 그룹 연구·사례 연구·개인 또는 팀 단위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 유럽과 세계를 향한 열린 교육을 지향하는 파리테크는 기본 커리큘럼에 연수와 1년간 해외 유학 과정, 유럽과 국제 네트워크를 통한 교수·학생 교환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파리테크는 △파리테크 (이학)석사 △엔지니어 학위 △전문 학위 △박사의 4개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다.
‘테크 이학석사’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석사학위(Bac+5 단계)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하나 또는 여러 파리테크 학교에서 대개 3학기 동안 교육을 받고 이후 기업체나 연구소에서 1학기 동안(4∼6개월) 연수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종일 수업제로 최소 15개월간 진행되며 일부 과정은 기간이 더 짧은 경우도 있다.
교육과정의 80%는 이과계 및 기술계 학문이 차지하며 그 밖에 경제·경영·인문과학·사회과학 등으로 채워진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교육기관에서 발급한 이학학사(Bachelor of Science)나 공학학사(Bachelor of Engineering) 수준의 학위를 소지한 사람은 입학 신청이 가능하며 강의는 주로 프랑스어로 이뤄진다. 입학 희망자는 프랑스어능력시험(TEF) 2단계를 확보해야 한다. 학비는 5000∼1만5000유로 수준이다.
‘엔지니어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5년간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파리테크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이 5년 과정 중 마지막 3년에 해당한다. 입학을 위해서는 2년간 준비반 과정을 거친 뒤 시험을 통해 1학년부터 시작된다. 준비반 과정은 일부 고등학교에 마련된다. 프랑스 이학석사나 해외 이학학사 학위가 있으면 서류심사를 거쳐 2학년에 편입할 수 있다. 입학 지원 시 프랑스 공식 언어학습기관(알리앙스 프랑세즈) 또는 문화원 등에서 발급한 공식 언어 인증서를 첨부해야 한다.
‘전문 학위’는 엔지니어 학위와 이학석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화 과정으로 등록금이 연간 6000∼1만유로 수준이다. 또 ‘박사과정’은 생명과학에서 재료공학 그리고 경제학·수학·IT 등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마련돼 있다. 이 밖에도 파리테크에서는 모든 전공 분야에서 며칠 또는 몇 달에 해당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산·학협력의 바이블=파리테크에서 운영되고 있는 연구소들은 △교육 △우수한 학문 △산업 응용·서비스 분야와 긴밀한 연계의 세 가지 원칙을 내걸고 있다. 1500명에 달하는 연구원 중 대다수가 파리테크에서 강의에 나선다. 이들은 공공 연구기관 또는 기업들과 맺은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을 담보하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공학 발전을 이끌고 있다.
연구소들은 또 국립과학연구센터(CNRS)·국립정보자동화연구소(INRIA)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형 국립연구소나 타 대학 연구소들과도 공고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기업과 구축하고 있는 산·학협력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연구의 상당 부분은 프랑스나 해외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진행되며 연구원들 역시 기업체 근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박사과정 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논문 작업을 마친 뒤 다시 기업으로 재입사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이론으로, 다시 현장으로’ 이어지는 실효성 높은 연구 개발과 산업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또 기업들은 연구소 내 과학위원회에 대표를 파견해 연구 개발과 경제계의 요구를 접목시키고 있으며 많은 벤처기업이 파리테크 연구소에서 잉태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립되고 있다.
이정환기자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