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특별 인터뷰]알리아 사버 건국대 신기술융합학과 교수

[창간특집-특별 인터뷰]알리아 사버 건국대 신기술융합학과 교수

  지난 5일 중년 여성들 사이로 앳된 얼굴의 노란 머리 소녀가 등장했다. 소녀는 단상에 올라서서 수줍지만 차근차근 말을 시작했다. 주제는 ‘다름을 만드는 힘’. 타인과의 차별성을 키우는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젊은’ 아니 ‘어린’ 소녀의 말을 경청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노란 머리 소녀는 강연 뒤 터져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에 수줍어했다. 영락없는 10대다. 단상에서 내려온 그녀는 바로 지난 6월 최연소 교수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알리아 사버 건국대 신기술융합과 교수(19)다.

전자신문은 창간 26주년을 맞아 사버 교수를 만났다. 많은 해외 석학을 두고 전자신문이 그녀를 만난 이유는 간단했다. 사버 그 자체가 영재 교육의 최대 수혜자로 그녀에게 ‘한국 영재 교육의 미래’에 대해 듣기 위해서다. 그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 스케줄이 연구, 강연, 강의 등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사버 교수의 프로필은 간단하다. 초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뒤 19세에 대학 교수가 됐다. 말 그대로 천재 소녀다. 사버는 천재 소녀로 남들과는 다른 ‘천재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쭐해질 법도 하지만, 그녀는 천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버는 “천재도 결국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본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천재적 지능이 성공을 담보하진 않는다”면서 “성공은 지적능력이나 사회적 성취도로만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사버 교수는 생후 8개월부터 글을 읽고 이해했다. 사버 교수의 부모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기대를 했지만 영재교육은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어머니는 기자로 바빴던 탓이다. 사버 교수는 두 살 때부터 여느 맞벌이 부모의 아이처럼 유치원에 다녔다. 남들과 달랐다면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졌다는 것이다. 다섯 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사버 교수는 “남들처럼 배우고 놀며 유아기를 보냈다. 물론 다섯 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남들처럼’은 불가능하게 됐다. 나와 친구들이 배우는 속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버 교수의 천재적 지적능력은 여덟 살 때부터 속도가 붙었다. 여덟 살 때 이미 중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으며 급기야 열 살에는 스토니브룩대학교 응용수학과에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들어간 대학이라 특별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똑같이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해야 하니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도 좋았다. 어린 나이에 들어간 대학이지만 꾸준히 공부해 열 네 살에 학업 우수상인 ‘숨마 쿰 라우데’를 받으며 졸업했다. 이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렉셀대학교에서 바이오나노 센서 분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초고속이다. 그녀는 지금 열 아홉 살이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사버 교수의 초고속 지적 행보에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었을까. 홈스쿨링이나 학교에서 특별대우를 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사버 교수는 평범한 이야기를 했다. 사버는 “영재교육 기관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대학에서도 영재로 입학했지만 특별대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영재교육이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도 최근 영재고등학교가 생기는 등 영재 교육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과학 천재 소년으로 이름이 났던 송유근군(11)의 사례를 설명하며 한국에서는 영재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직접 교육원에 찾아다니든지 집에서 교재 등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르친다고 이야기했다. 사버 교수는 미국 내 영재교육은 주별로 각각 다를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강제해 인재를 키우는 일이 없다고 했다. 주 정부나 기초단체에 교육 커리큘럼을 맡긴다는 것이다. 그는 “영재를 위해 정부가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적인 분위기는 미국 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신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은 월반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사버 교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적 결과보다는 성장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더욱 영재를 양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그녀는 “영재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나 주변 선생님들과 대화를 거쳐 목표를 찾는 것”이라며 “나의 부모님은 그들의 욕심이나 욕망 때문에 자신들의 목표를 나에게 주입시키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목표와 흥미, 재능을 찾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말하며 부모님께 참 고마운 것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보여준 ‘유연함’이야말로 자신과 같은 영재를 양성하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사버 교수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대화를 거쳐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하지만 마지막 결정은 본인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연함은 서버 교수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였다. 사버 교수가 강조하는 영재 교육에서 ‘유연함’은 공부방법에서도 드러난다. 학창시절 사버 교수는 필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필기를 하지 않고도 A학점을 매번 받아내니 친구들의 시샘이 말이 아니었다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외우지 않고 원리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암기식 학습은 단기적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체화된 지식으로 남긴 힘들다. 사버 교수는 “무조건 받아적고 외우는 것보다는 머릿속에서 이해하고 책으로 학습하는 게 더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말하며 무조건 외우는 공부는 아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사버 교수는 특히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공계 공부는 무조건 외우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인 지인의 집에 놀러가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봤다며 “종이가 까매지도록 외우듯 하는 공부가 과연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킬지는 의문”이라며 “무조건 외우는 데 쏟는 강박과 시간 때문에 개념을 이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배우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 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사버 교수와 같은 천재를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질문에 그녀는 사회성과 정직함·현실감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영재를 공부만 하는 괴짜라고 생각해 사회 속에서 쉽게 어울리기 힘든 편이라고 말하며 “천재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반드시 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그와 함께 치러야 할 외로움 등에서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직함과 현실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녀가 말하는 현실감은 사회 적응력과 일맥상통한다. 영재 교육도 좋지만 또래와 너무 동떨어진 교육의 병폐는 심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는 천재였던 사람들이 왜 성인이 되면 모두 사라지느냐고 반문했다. 사버는 “천재성은 과신하면 게임을 할 때 손에 쥔 카드처럼 한번의 실수로 흔들릴 수도 있고, 이를 믿고 실수에 익숙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쉽게 황폐해질 수 있다”며 “진실함과 함께 현실감 있는 사고는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본인 역시도 공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며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맞서다 보면 벌써 미쳤을 거라고 농담했다.

천재소녀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사버 교수는 내년 2월까지 건국대와 계약이 돼 있다. 대학생 대상 일반 강의보다는 연구 중심 활동에 치중할 계획이며 강의는 특강 등에서 하고 있다. 나노입자, 나노튜브 재료 등과 같은 나노 기술 등을 연구해왔고 특히 라만 분광법을 통한 화학적 구분으로 나노입자를 기능적으로 최적화한 나노재료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해왔다. 건국대에서도 나노 소재 기술 개발에 집중 연구하고 있다. 그는 “가르침과 연구를 계속하는 게 목표”라며 “무엇보다 오는 11월에 잡혀 있는 클라리넷 콘서트를 위해 맹렬히 연습 중”이라며 밝게 말했다.

◇알리아 사버(Alia Sabur)는

198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생후 8개월부터 글을 읽고 이해했다. IQ는 측정불가다. 초등학교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고 바로 스토니브룩대학 응용수학과에 진학해 열 네 살 때 졸업했다. 스토니브룩대학 졸업 당시에 학업 우수(숨마 쿰 라우데)상을 받으며 졸업한 최연소 대학생으로 기록됐다. 또 미 국방부와 NASA, NSF(영국 국가과학재단)에서 장학금과 상을 받은 ‘최연소 과학자’라는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공부뿐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배웠고 열 한 살 때 솔로로 데뷔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FOX 등 미국 내 언론이 ‘천재소녀’로 앞다퉈 소개하기도 했다.

열 네 살 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렉셀대학에서 바이오 나노 센서분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2007년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학위논문 통과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지난 6월 건국대학교 신기술융합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제자 콜린 매클로린이 300년 전에 교수 임용 시 세운 최연소 교수 임용인 19세 7개월을 깨고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이성현기자 ar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