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환율변동 헤지 파생상품)’ 손실의 첫 피해자가 된 태산엘시디에 삼성전자가 최후의 지원책으로 ‘직접 사급’을 단행했다.
직접 사급이란 최종 구매 당사자(삼성전자)가 2차 협력사로부터 부품·소재를 구입한 뒤 이를 1차 협력사(태산엘시디)에 공급, 임가공시키는 조달 방식이다. 2차 부품 협력사들은 최종 구매자와 직거래 한다. 1차 협력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더라도 납품 대금을 떼일 염려가 없다. 현재 태산엘시디는 이 같은 조치 덕분에 백라이트유닛(BLU)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받아 주력 제품인 46인치 LCD TV용 BLU를 공급 중이다.
태산엘시디는 삼성전자의 LCD BLU 최대 협력사 가운데 하나여서 당장 BLU 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직접 사급 또한 한시적인 조치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만간 유동성 위기를 해소할 획기적인 대안이 등장하지 않는 한 태산엘시디의 진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태산엘시디에 직접 사급을 통한 지원 방침을 확정, 지난 19일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후 처방으로 직접 사급을 택한 것은 당장 태산엘시디를 대신할 수 있는 46인치 BLU 공급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솔LCD·디에스엘시디가 일부 생산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조달하는 46인치 BLU 전체 물량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번 우영의 부도 당시와는 달리 아직 46인치 물량을 아직 타 협력사로 넘기지는 않고 있다”며 “향후 2∼3개월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직접 사급을 지속할지를) 최종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산엘시디가 일단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자금 여력으로는 유동성 위기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현식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 산정된 평가손실은 태산엘시디가 향후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업이익보다 훨씬 많다”며 “환율 안정으로 인한 평가손실 감소와 외부의 금전적 지원 없이는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이번 직접 사급 조치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동시에 제2의 우영 사태를 막기 위한 임시 방편일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우영에 이어 태산엘시디마저 무너지면 삼성전자 LCD총괄은 주요 협력사 두 곳이 문을 닫게 된다. 대외 이미지에 신경 써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가뜩이나 외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래저래 고육지책인 셈이다.
조만간 정부가 내놓기로 한 키코 지원책도 태산엘시디를 구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중기청이 검토 중인 프라이머리 회사채담보부증권(CBO)은 최소한 ‘B+’의 신용등급은 돼야 하는데, 이미 회생절차를 신청한 태산엘시디는 거의 ‘신용’이 없기 때문이다. 일말의 가능성으로 정부의 공적자금을 기대한다 해도 중소기업 키코 손실 규모가 총 1조8000억원을 넘어서는 마당에 태산엘시디만 선별 지원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현재 키코 손실에서 비켜나 있는 한솔LCD 등 여타 협력사들로 BLU 조달 물량을 전환할 것으로 보이는 향후 몇 달간이 태산엘시디의 운명의 가능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한·안석현기자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