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러 정상의 ‘다른 희망사항’

[기자수첩] 한러 정상의 ‘다른 희망사항’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 중인 모스크바 현지에서 수행기자단은 러시아 방문성과를 두고 토론을 했다. 논의 대상은 주로 우리나라와 러시아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것, 다른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신3대 실크로드’였다.

 두 가지에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해 정치·경제적 화해를 이루고 싶어하는 우리 측의 희망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희망사항에는 우리만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게 문제다. ‘기브 앤 테이크’를 원칙으로 하는 외교 관례상 러시아에 양보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경제총리’ 푸틴은 이 대통령과의 연쇄 회담에서 말을 맞춘 듯 “교역구조 개선, 러시아산 기계·기술장비 및 첨단 기술 제품의 수출물량 확대”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대표적인 대한국 수출 품목을 자원(철강·비철금속·광물성 연료·수산물)에서 첨단기술 제품으로 돌리고 싶어했다. 물론 한국에서 자동차·석유화학·휴대폰·가전제품을 수입하면서 생긴 무역역조 현상을 개선하겠다는 속내도 들어 있다.

 푸틴 총리는 더 구체적이었다. ‘교역투자 확대, 에너지·자원 협력, 극동시베리아 개발 협력’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원자재 위주의 대한국 수출구조를 탈피, 첨단기술 제품의 수출 확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쯤이면 러시아의 ‘희망사항’도 알 만하다. 첨단 우주·과학 부문 원천기술 공유로 미국과 일본의 기술패권시대를 견제할 뿐 아니라 정치적 긴장 완화를 원하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며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꾀하겠다는 ‘크렘린’의 의도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내부적으로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미국과 일본, 중국에 비해 대러시아 관계에 소홀했다는 자성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러시아 측의 불만도 없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는 우리의 이런 조바심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귀국길 청와대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격상’과 ‘3대 실크로드’의 자화자찬에 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스크바=김상룡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