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 없었어요. 실리콘밸리라면 우리 아이디어에 투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에서 150억원을 투자받은 3D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누리엔 김태훈 대표의 말이다.
국내 웹 벤처기업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로 몰려가고 있다.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웹2.0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터넷 강국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환영받는 국내 벤처들=판도라TV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VC DCM에서 100억원을 투자받았다. 지난 6월 영어서비스를 시작한 큐박스 역시 실리콘밸리의 엔젤투자를 받은 뒤 미국과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30일 정식서비스를 시작하는 3D SNS 누리엔은 실리콘밸리의 VC 두 곳에서 150억원을 투자받아 이목을 끌었다. 3년 전 국내 투자처부터 알아봤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어 기획안만 들고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투자 유치를 받고, 2009년 북미 지역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큐박스는 실리콘밸리의 엔젤투자를 받고, 지난 7월 영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현재 ‘ 미국과 중국에 현지 법인을 두고 글로벌 서비스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즈포유, 파프리카랩 등 신규 웹2.0 기업은 아예 국내 투자유치를 포기하고 실리콘밸리에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미국 VC로부터 투자받기가 더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척박한 국내 토양=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웹2.0 기업이 포함되는 소프트웨어·정보통신분야 벤처 기업 수는 2003년 1525개에서 2004년 1010개, 2005년 808개, 2006년 656개로 해마다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털 중심의 인터넷 생태계 △이용자의 보수적인 태도 △전문성 있는 VC의 부재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규제 일변도의 인터넷 정책 역시 산업을 위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접적으로 창업 열풍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류한석 소프트뱅크 미디어랩 소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웹2.0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은 사회분위기, 산업환경, 정부지원, 투자 등의 미비점이 엮여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형 포털이 모든 서비스를 자체 서비스로 바꿔가는 구조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웹2.0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굿모닝신한증권 수석연구원은 “네이버의 첫눈 인수처럼 포털이 성공 가능성 있는 기업을 공유가 아닌 소유하는 산업 환경에서 자유로운 시도가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성과 열정의 차이=전문적인 VC의 존재는 웹2.0 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투자 제안을 받은 웹2.0 기업 대표들은 “창업 경험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사업의 단계마다 조력자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리콘밸리 VC들은 기업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마케팅·재무·R&D 등 각 기업이 부족한 요소를 채워줄 수 있는 적합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등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전문성은 그 산업을 향한 애정과 비전까지 포함한다”며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VC들은 산업의 CEO들보다 5∼10년 앞을 내다보고 산업에 애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운기자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