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과 5월 국내 굴지의 IT서비스업체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자사의 티차트를 불법으로 사용했다고 쉬프트정보통신을 고소한 스페인의 SW기업 스티마가 쉬프트의 고객사로까지 고소를 확대한 것. 아직 진행형인 이 공방은 최종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알 수 없으나, 불법복제 협의가 있는지 모르고 SW 제품을 정상적으로 구매해 사용한 사용자(기업)도 소송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주목된다. 더욱이 아직 국내에서는 사례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불법복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해당 SW를 시스템에 활용한 최종 소비자도 실제로 배상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작권 침해 범위 어디까지?=우리는 일반적으로 저작물을 복제해 사용하거나 배포하는 것만을 저작권 침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이용하는 모든 행위를 광범위한 의미의 저작권 침해로 분류하기 시작했으며, 정상적으로 구매한 제품을 사용했더라도 해당 제품에 포함된 SW가 저작권 침해에 휘말리게 되면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정황에 따라 다소 판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저작권 침해는 실제로 저작권을 도용한 업체뿐 아니라 도용한 저작권으로 개발한 제품의 사용자까지도 소송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 저작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는 만약 휴대폰 완제품의 아주 소소한 부분에서라도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때, 분쟁을 해소하거나 안 되면 판매한 휴대폰 전량을 수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사례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국 굴지의 종합 IT업체에 인수된 A사는 자사가 공급한 제품이 개발 용역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하도급되는 과정에서 일부 저작권을 침해해 문제가 됐다. 또 오스트리아 정부는 건강보험과 관련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 SW가 포함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 특히 이 시스템은 저작권 문제가 제기된 시점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오스트리아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개 SW 또한 저작권 분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개 SW는 공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 시 공개 SW를 이용하는 사례가 보편화되고 있으나, 공개 SW 또한 각각의 라이선스가 있다. 전문가들은 “공개된 소스를 가져다 쓸 때 소스를 사용해 개작한 작업 결과물을 공개해야 하는데 상당수 개발자가 이를 마치 자신이 개발한 제품처럼 생각해 라이선스에 명시된 조건 이행을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종제품 제조업체도 SW 저작권에 관심=SW 저작권 분쟁의 범위가 해당 SW 개발 업체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 굴지의 전자 및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저작권 관련 인력을 증강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특히 SW 검증 인력 뿐 아니라 법적 문제를 관리하는 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 휴대폰에 들어간 모든 SW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저작권에 대한 최고경영자 의식과는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SW를 일일이 검증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의 일부 대책은 정부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SW·디지털콘텐츠와 같은 무형의 저작물 보호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저작권 보호는 산업과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이 같은 정서를 반영해 저작권자는 포털 사이트 등에 불법복제한 사용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또 보호기간도 ‘저작권 사후 50년’에서 ‘저작자 사후 70년’ 또는 ‘발행 후 70년(단체명 저작물)’으로 강화됐다. 또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 SW는 행정업무용 SW에 선정됐더라도 선정이 취소되고, 저작권 침해 사실이 밝여진 때에는 해당 제품은 물론이고 동일 업체 모두 5년간 행정업무용 SW로 선정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작권은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증대해가고 있는 상황이므로 저작권자와 사용자간의 균형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저작권 정책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는 저작권에 대한 확고하고도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다방면의 캠페인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저작권을 스스로 지키려는 움직임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실제로 최근 디지털저작관리(DRM) 시장이 성숙되고 있다. 그만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DRM은 문서나 콘텐츠 등 디지털로 만든 저작물이 복제되거나 함부로 유통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솔루션이다.
기업에서는 중요 문서의 유출을 막는 용도로, 콘텐츠 제공자와 서비스 제공자들은 무단 복제를 막아 합당한 과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용도로 활용한다. 최근에는 설계도면·지리정보·소스코드·그래픽데이터 등 기존에 DRM을 적용하기 힘들었던 전문 데이터 분야 솔루션도 속속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SW저작권협회는 “저작권 문제는 분쟁의 발생 그 자체만으로 분쟁 당사자는 물론이고 고객기업의 경영 활동에도 영향을 준다”며 “법정 소송으로 진행된다면 그 타격이 큰만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식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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