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은행이 내년 6월까지 회생 가능한 기업에 한시적으로 자금을 특별 지원키로 합의했다. 통화파생상품 ‘키코(KIKO)’로 손실을 본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선별적으로 은행의 신규 대출이나 대출만기 연장, 출자 전환 등이 이뤄진다.
한나라당과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등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키코거래기업 포함)’을 마련했다. 본지 10월 1일자 3면 참조
이 자리에서 당정은 국책은행과 신·기보 보증 등을 통해 8조3000억원의 유동성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회생 가능한 기업을 선별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이 신용등급이 요주의 이상이면서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을 제시하면 은행들이 이를 평가한 뒤 4개 등급으로 분류해 지원책을 마련한다. A등급(정상기업)과 B등급(일시적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에는 자금을 빌려주고 신보와 기보가 특별 보증을 해 줄 예정이다. C등급(부실징후가 있으나 회생가능한 기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며 D등급(회생 불가능한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은행은 이런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총액한도 대출규모를 확대, 시중은행의 대출여력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금감원도 은행 경영실태평가 때 중소기업 지원 실적에 대한 평가 비중을 높이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은행 담당 임직원에 대해서는 대출이 부실화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키코 손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주도하고 은행과 신·기보가 참여하는 ‘키코계약은행협의회’를 구성해 회생 가능성을 판단한 뒤 손실액을 감당할 수 있는 신규 대출이나 출자 전환, 분할 상환, 만기 연장 등을 해주기로 했다.
금융위는 관계부처와 함께 ‘중기 유동성 대책반’과 산하에 ‘키코대책반’을 구성해 이번 지원책의 추진 현황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 대출 동향을 점검하기로 했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번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방안은 은행을 앞세워서 함께 가는 것이 특징”이라며 “금융당국과 은행, 보증기관이 함께 회생가능한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 흑자 도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정부 대책을 놓고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면서도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기존에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이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실질적으로 시중은행이 움직여야 하는데, 대출을 회수하려는 은행 측에서 정부의 간접 지원사격만으로 그간의 기조를 바꿀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이 우량 중소기업에만 제한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정남기 연구원은 “당장 부실징후가 없는 A, B등급 기업은 정부 지원이 없더라도 은행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굳이 정부가 대출 보증까지 서면서 이들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것보다 중간층에 위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게 실질적으로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상희·이형수기자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