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 "내년엔 뭘 먹고 사나"

 “내년에는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지경이다. 아마 대다수 기업이 올해보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고….”(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대표)

 “당장은 어렵더라도 업종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시황이 악화되면 설비 투자 축소는 물론이고 생산량 축소와 판가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디스플레이 부품 업체 CFO)

 

 국내 주력 기간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장비·부품 등 후방 산업군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지난 2년 가까이 위축됐던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도 불투명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올해 그마나 버팀목이 됐던 디스플레이 시장의 호황도 내년께면 나락에 접어들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소자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은 지금까지 거의 매년 서로 부침이 엇갈리며 그 영향을 상쇄해왔다는 점에서 동반 침체가 예상되는 내년도 시장을 놓고 후방 산업의 고민이 크다.

 ◇디스플레이 너마저=지난 상반기까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LCD 패널 시장이 최근 빠르게 침체되면서 벌써부터 내년도 시장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다.

 삼성·LG를 비롯, 전 세계 LCD 패널 업체들의 대규모 설비 투자가 쏟아졌던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신규 투자가 실종될 것이라는 우려다. 시장이 위축되면서 공급량이 줄어들면 관련 부품·소재 업계의 어려움도 불 보듯 뻔한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당초 내년으로 예정했던 8-2 2단계 라인 투자를 1년가량 늦추기로 했다. 요즘 같은 성수기에도 매출 감소를 겪자 내년 초로 잡았던 11세대 투자도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상반기까지만 해도 6세대 신규 라인에 이은 추가 라인 투자와 8세대 2기 라인(8-2) 투자를 이르면 연내 단행할 것이 유력했다. 또 내년 10(11)세대 투자 계획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최근 갑작스럽게 시황이 악화되자 이들 신규 투자의 움직임은 자취를 감췄다.

 한 장비 협력사 대표는 “삼성이나 LG 모두 현재 발주한 물량을 제외하면 불확실성이 다분하다”면서 “이미 발표한 투자 계획도 내년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만 패널 업체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4위 업체인 CMO는 당초 연내로 예정했던 8.5세대 투자를 연기했으며, AUO도 8세대 이후 차세대 투자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 수출 전선에도 비상이 걸린 셈이다. 여기에다 반도체 투자 회복 기미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당장 삼성전자만 해도 오는 4분기 반도체 실적이 적자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하이닉스·마이크론·엘피다·도시바 등 주요 업체가 대부분 큰 폭의 투자 축소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생존이 문제=대다수 장비·부품 업체에는 말 그대로 ‘살아남는 것’이 최대 과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를 겸업하는 한 업체 대표는 “일정 정도 상호 보완해왔던 사업구조도 내년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익은 물론이고 매출 감소도 감수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LCD 주요 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 업계도 올해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국내 최대 BLU 업체 관계자는 “올해 들어 우영·태산이 무너진 것은 전조에 불과하다”면서 “대규모 판가 인하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협력사 판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일변도에서 벗어나 태양광 등 신규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한 업체는 그나마 다행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태양광 사업에서 올해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예상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절반 이상 그 비중을 늘리며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서한기자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