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말 망하겠습니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8일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의 CCTV 제조업체 사장은 원달러 환율을 지켜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달러 환율이 나흘 동안 200원가량 폭등, 이날 환란 이후 처음으로 1380원대로 올라서면서 키코(KIKO)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회사의 피해는 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에는 회의감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대책의 문제점으로 그는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은행을 내세운 점을 꼽았다. 정부가 당사자 간 자율을 강조했지만 과연 은행이 자율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해 유동성을 지원하겠냐는 것이다. 은행들도 가뜩이나 세계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리스크를 떠안기는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정남기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유동성 지원은 우량기업에 쏠릴 수밖에 없어 시중에 돈이 풀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정작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출 만기 연장 등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창호 뉴인텍 이사는 “올해 할 것을 내년으로 연장해주는 셈인데 별 의미 없다”며 “목숨을 연장해주는 차원에 불과하며 손해를 탕감해주는 등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큰 의미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중기대책이 외면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위기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위기상황이 아니라는 말만 하고 있다”며 “일관성 없이 단기대책만 내놓다가는 부도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강구하는 대책은 대출을 연장하는 정도인데 급한 불부터 꺼준다는 면에서 물론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시장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주호 디엠에스 기획팀장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수출 촉진기금처럼 해당 기업의 연간 수출액 한도 내에서 일정 부분을 장기 저리 융자 형태로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국책은행에서 직접 자금을 풀어야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각종 기업 활성화 대책도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이 대기업에만 유리하고 중소기업에는 불리한 것이 아닌지 검토하고 입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 있고 정부가 팔 걷고 나서야 할 정책이 있다”며 “중소기업 문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 실행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KIKO 만기도래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