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건설하는 대규모 송·변전소 시설에 대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자계로 인한 피해 우려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친환경 욕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자계에 대한 인체 영향을 구명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지속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비 용지 선정 과정에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설 VS 반대=진도군은 이달 초 진도-제주 간 직류송전(HVDC) 연계사업에 대해 “육상 송전선로의 지중화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을 철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도 관련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건설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지식경제부와 한전에 전달했다.
지난달 한전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서 신포천-남면 지역에서 추진 중인 송전선로 및 변전소 건설공사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준비했으나 지역 대표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밖에 2010년 12월 준공 목표로 지난 8월 공사가 시작된 신고리 원전에서 북경남변전소(경남 창녕군 설치 예정)에 이르는 약 90㎞ 거리의 송전선로 건설공사도 이미 180건이 넘는 민원이 제기됐다.
◇지가하락에 전자계 우려 더해져=주 갈등 원인은 환경훼손 및 지가 하락 우려다. 진도군도 철탑 70∼80개가 들어서면 경관 훼손으로 진도 이미지가 추락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밝혔다. 양주시 남면 주민들이 변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것도 건립 예정지가 주거지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전자계로 인한 건강 우려도 더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6월 휴대폰이나 전자레인지 등의 가전제품과 고압송전선에서 배출되는 전자계가 ‘소아 백혈병의 발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WHO는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의 역학 조사 결과, 평균 3∼4밀리가우스(mG) 이상의 전자계에 항시 노출되면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두 배가 됐다고 밝혔다. 다만 메커니즘이 구명되지 않아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건강’과 관련된 이상 이것만으로도 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에 대해 한전은 WHO는 전자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인 833mG 이하를 준수하고 있으며 송전선로 바로 밑에서 측정한 전자계 평균도 20mG가 채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의미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전인수 연구위원은 “833mG 가이드라인은 순간적 피크의 한계치를 말한 것이지 일반 사람들이 우려하는 하루 7∼8시간의 장시간 만성노출에 대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연구, 제도개선 필요=문제는 전력수요와 송전설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한전은 오는 2015년에 전력수요가 1998년의 두 배인 7000만㎾가량으로 늘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맞춰 정부에서 인가를 받은 송전설비 건설사업도 40개가량이다.
전문가들은 전자계와 인체영향에 대한 면밀하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전자계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막연한 경우가 많다”며 “관련 연구로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한전이 송·변전 시설을 건설하면 지식경제부의 허가만 얻으면 개인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게 한 것 등이 갈등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네덜란드처럼 전자계 노출에 대한 권고치, 기준치를 설정하거나, 주거시설과 선로 경과지 간 이격거리 설정 등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 전인수 연구위원은 “전자계는 향후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라며 “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순욱기자 choi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