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국제경제기구 창설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쉐라톤워커힐에서 열린 ‘세계 지식포럼’ 축사에서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빠르게 세계화되고, 경제가 국제 간에 빠른 속도로 넘나드는 이 시점에 사전 사후를 규제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통제할 수 없는 행위들이 폭증하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사악한 결과’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을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제도는 제때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경제 구상인 ‘광역경제 블록화 추진’은 물론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EU와 북미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기구 개편에 아시아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가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이 국내 금융시스템 붕괴로 국제적 위상에 손상을 입으면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 우리나라가 이런 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왜, 국제기구를=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를 아우르는 ‘구심점’을 꿈꿔왔다. 국제기구 창설 구상은 EU와 북미 중심의 세계 경제 주도권 다툼에서 지분확보를 노린 대외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그간 국제 정상회의나, 국가별 정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한 제3세계 지원프로그램 가동, 탄소 배출권 등을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이를 통해 아시아와 북미, EU 국가들에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를 제고시키며, 동시에 국제 무대에서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입장을 강화하고, 아시아 경제 외교 무대에서 활동공간을 만들려는 것이 목표다.

 아시아 경제에 대한 위상 제고와 아시아 권역에서는 우리나라 입지를 강화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특한 경제 외교 스타일인 셈이다.

미·일·중·러 4강 외교가 관계 복원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경제 부문 국제기구 창설 제안은 이 대통령의 정치경제적 외교 능력을 국제무대에서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기존 경제관련 국제기구들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아시아 및 제3세계 국가에 대해 러브콜을 던지는 동시에 제1, 2세계 국가에 대해서는 한국의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별로 잃을 게 없는 승부수다.

◇어떤 국제기구를=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신(新) 국제경제질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대륙별 쿼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인도 등에 밀려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선도적으로 기구 창설에 대한 제안을 함으로써 이런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속내를 드러내는 정확한 표현이다.

이 대통령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샌드위치’ 신세인 대한민국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1차 대상은 아시아 국가들이다. 이미 이 대통령은 도야코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협약에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카드를 꺼낸 바 있다. 올해 열리는 베이징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ASEAN(동남아국가연합)+3 회의 등은 새로운 경제기구 창설이 구체화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구상 중인 내용은 우선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해 아시아가 중심이 되는 국제기구 창설과 아시아 금융위기를 사전, 사후에 대처할 수 있는 금융 기구 창립 등이 예상된다. 서방 중심의 경제 구도를 시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 국가의 연합을 통해 EU와 북미 등 선진사회에 대응하는 경제 구도 개편이 이 대통령이 노리는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다.

이 계획은 만만찮다.

 우선 우리나라를 둘러싼 4강의 역학구도와 EU경제권의 반발 등의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경제관련 국제기구 창설보다는 북미, EU 등의 경제 구도상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의 입지를 크게 반영시키는 것이 1차 목표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김상룡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