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장비 업체들도 고환율에 울상

  요동치는 환율로 울상인 것은 국내 업체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반도체·LCD 장비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고객사와 원화로 결제하는 경우 환율이 높을 때 본사로 송금하는 금액이 대폭 깎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달러에 비해 엔화가 더 큰 폭으로 오른 탓에 일본계 장비 업체들의 고충이 더 심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진정되면서 다소 안도하고는 있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환율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AKT·매슨·도쿄일렉트론·알박·니콘·캐논 등 내로라하는 해외 장비업체의 국내 법인들은 최근 급등한 환율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고객사와는 본사가 직접 장비 계약을 맺고 엔·달러 등으로 결제하지만, 장비에 소요되는 핵심 부품·소모품 등은 원화로 결제받은뒤 현지 화폐로 본사에 송금한다. 부품·소모품의 경우 많게는 연간 장비 매출의 20%선까지도 차지한다는 점에서 요즘 같은 상황은 비상이다. 그렇다고 국내 고객사에 공급 가격을 환율 변동폭대로 갑자기 올려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구매 시기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환율이 안정될때까지 관망하는 정도가 배려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본계 장비업체인 A사 국내 법인은 한때 1400원대까지 환율이 치솟았을 때 국내 고객사 수주금액을 엔화로 환산할 경우 40% 가까이 줄었다. 본사에 대금 결제를 못해줄 상황인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환율이 떨어지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A사 대표는 “지금은 본사의 매출 목표를 조정하고 고객사에는 환율 변동을 감안해 달라고 요청하는 정도가 전부”라며 “환율 안정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계 장비업체인 B사의 국내 법인은 연간 전체 매출의 15%를 부품이 차지한다. 환율의 영향이 아직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타격은 불가피하다. B사 국내 대표는 “부품의 경우 본사와 지사간 이전가격으로 이뤄지는데 갑자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 손실 부담을 국내 법인이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핵심 부품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장비 업계도 물론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수주한 장비의 경우 납품 가격을 올려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요즘 같은 경기침체에다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경우 내년도 반도체·LCD 투자가 대폭 연기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이다. 삼성·LG·하이닉스 등 국내 소자업체들이 내년도 투자에 더 큰 부담을 가질 것이 불 보듯 뻔한 탓이다. 국내 장비업체 C사 대표는 “외국계 업체에 비해 가뜩이나 박한 마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이중삼중의 고통”이라며 “국내 소자 업체들의 확고한 투자 의지 없이 장비 업계 전반이 고사 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서한기자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