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관련돼 자주 언급되는 꽃이 바로 튤립이다. 163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 투기 광풍이 불었다. 당시 튤립은 귀족사회의 취미였다. 그러나 튤립 소유 정도가 부의 척도가 되면서 튤립은 투기수단으로 변질됐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 국민이 튤립 투기 광풍에 참가할 정도였다. 결국 구근 1개 값이 암스테르담 중심가의 일반주택 3채 가격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가격이 한 번 꺾이자 공황심리가 가세해 불과 4개월 사이에 95%나 하락했다. 역사상 최악의 폭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미친 짓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미친 짓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 투기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90년대 말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벤처 열풍이나 최근 미국에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는 결국 투기의 산물이다. 모든 상품에는 상응하는 가격이 있으며 이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신뢰의 범위를 넘어서는 투자는 투기가 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사회적 투기심리가 보태지면 걷잡을 수 없는 거품이 생겨난다. 이러한 거품은 언젠가는 붕괴되게 마련이고 경제 시스템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파국이 올 것을 알면서 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투기를 계속하게 된다. 이 게임은 막차를 탄 사람이 결국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는 ‘수건 돌리기’와 같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어느 정도 거품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거품은 자금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생산적 설비투자보다는 재테크를 위한 수단으로 쓰여질 때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금융·산업 분리를 완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자본의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거품이 발생할 소지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 규제는 완화하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17세기 튤립 투기 광풍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을 잊지 말자.
권상희기자<경제교육부>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