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배우 가가와 데루유키. ‘개, 달리다(감독 최양일)’와 ‘귀신이 온다(감독 장위안)’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그는 이 영화를 이렇게 평했다.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세 개의 약을 복용한 느낌.’
가가와가 말한 문제의 영화는 ‘도쿄(TOKYO, 봉준호·미셸 공드리·레오 카락스 감독) ’다. 세 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여 있는 도쿄의 탄생은 다소 생뚱맞다.
지난 2006년 봉준호 감독은 뉴욕과 파리에 살고 있던 재능 있는 감독을 ‘도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호명한다. 미셸 공드리(뉴욕)와 레오 카락스(파리)에게 그가 한 제안은 단어 하나였다. 바로 도쿄. 다층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도쿄라는 도시로 3편의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게 봉 감독의 의견 전부였다.
하지만 단어 하나로 한 편의 소설을 쓸 수 있는 그들이 아니던가. 개성 있는 세 감독은 도쿄를 한 시선 아래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단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말이다.
영화 도쿄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요지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들리는 도쿄(봉준호)’ ‘아키리와 히로코(미셸 공드리)’ ‘광인(레오 카락스)’은 도쿄라는 거대 도시를 요지경에 넣고 무한 분열시킨다. 분열과 결합을 거듭하면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도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에 생경하다. 흔들리고 외롭고 미쳐가는 도시가 바로 도쿄다.
옴니버스 영화는 감독에겐 다소 잔인하다. 감독 간 미세한 우열이 존재하는 곳이 옴니버스 월드다. 도쿄에도 이런 옴니버스 영화의 특징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도쿄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다른 옴니버스 영화처럼 작품 간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 거대 감독들의 포스가 작용했음도 당연하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는 미셸 공드리다. ‘아키라와 히로코’에서 공드리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고 싶다는 도쿄인의 숨겨진 열망에 천착한다. 이 단편은 의자가 돼 버린 여자라는 다소 동화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동화적인 소재는 ‘수면의 과학’을 만든 공드리의 기민함을 발동시킨다. 공드리는 주변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주인공 히로코(후지타니 아야코)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판타지로 시작해 코믹으로 마무리한다.
레오 카락스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빼곤 말할 수 없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치명적인 사랑을 파리라는 도회적 공간에 녹여낸 수작이다. 2부 카락스의 ‘광인’은 퐁네프와 같지만 다른 작품이다. 카락스는 하수도에 사는 광인(드니 라방)이라는 공포스러운 소재로 위험 사회 도쿄를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맨홀 아래 사는 괴물은 도쿄의 숨기고 싶은 자화상이다. 도쿄는 시스템화된 매뉴얼 사회라는 외피를 갖고 있지만 성폭력, 이지매(집단따돌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의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는 위험 사회다. 깨질 듯한 사랑을 그린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카락스는 늙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의 사랑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도쿄를 이야기한다. 11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가가와 데루유키)는 매주 토요일이면 피자를 시켜먹는다. 배달 소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그녀(아오이 유우)를 보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 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일탈. 히키코모리는 사라진 소녀를 찾아 11년 만에 외출을 감행한다. 봉준호 감독의 능력이 발휘되는 곳은 남자의 일탈을 묘사하는 시점이다. 봉 감독은 괴물에서 보여줬던 일촉즉발의 상황을 흔들리는 도쿄에서 완전히 재현한다. 11년 만에 외출한 남자. 봉 감독은 그에게 자기 파괴라는 희대의 선물을 선사한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