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끄고 나니 실물이 문제

 전 세계 증시가 현재 진행 중인 금융위기를 그대로 반영해 15일 큰폭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의 한 중개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증시마감 모니터를 체크하고 있다.<뉴욕(미국)=EPA연합뉴스>
전 세계 증시가 현재 진행 중인 금융위기를 그대로 반영해 15일 큰폭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의 한 중개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증시마감 모니터를 체크하고 있다.<뉴욕(미국)=EPA연합뉴스>

전 세계 공조체제 구축으로 금융위기는 한 고비 넘겼지만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실물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금융위기는 한숨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실물경기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기 경착륙을 방지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게 됐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주요국들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이는 ‘재정 악화→세금부담 증가→수입 감소→소비 위축→경기 침체→투자 부진→경기침체 가속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증시는 이같은 침체공포에 사로잡혀 15일(이하 현지시각) 기록적인 폭락세를 나타냈다. 뉴욕증시의 S&P500지수는 전날보다 9.03%(90.17포인트) 폭락한 907.84로 장을 마쳐,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다우지수도 전날에 비해 733.08포인트(7.87%) 폭락한 8577.91을 기록, 이틀만에 다시 9000선 아래로 내려섰다. 나스닥지수도 8.47% 떨어졌다.

실제로 국내 상황도 실물경제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만2000명(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5년 2월(8만명) 이후 3년 7개월 만에 가장 적다.

 신규 취업자 수는 올 3월(18만4000명) 이후 줄곧 10만명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취업자 수는 지난해 7월까진 평균 30만명대였다.

소비 부진도 심각해 올 8월 소비재판매 증가율은 1.5%에 불과해 지난해 연간 소비재판매 증가율(5.3%)은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투자 부문도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 7월 설비투자 증가율이 9.9%로 올라 회복세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기대를 모았지만 8월에는 1.6%로 추락했다.

우리나라 수출대상국인 미국은 9월 소매판매가 1.2% 감소하며 3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3분기 실질 소비가 17년만에 최악이라는 경계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노동시장까지 실물경기와 관련된 모든 지표들이 연일 하락세를 나타내자 미 정부는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금융시장 안정은 필수적인 첫 단계일뿐”이라며 “미국 금융시스템이 정상을 회복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는다 해도 경제가 조속히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시장이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경기 침체의 근원지가 되고 있고 개인소비·기업투자·고용 역시 둔화되고 있다”며 “신용시장 경색이 해소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맞게 된다.

정부는 금융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시장 안정을 위한 중기 액션플랜을 다듬는 한편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고용·물가 등에 걸친 입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일단 불길은 잡혔지만 아직 불안요인이 해소된 것은 아니며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며 “실물경제로의 확산 여부가 중요 변수인 만큼 정부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16일 오전 물가·민생안정 차관회의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가격 인상요인이 없는데도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빌미로 편승인상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권상희기자,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