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초강력 금융 안정화 방안 및 유동성 증대 방안을 발표했다. 14일(현지시각)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시티그룹·웰스파고·뉴욕은행·스테이트스트리트 등 9개 금융기관에 대해 2500억달러 규모의 자본을 투자(우선주 포함)키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무이자 예금에 대한 무제한 지급 보증, 은행 발행 우선주 및 채권에 대한 지급 보증, 기업이 발행한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늘리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 미국 증시 “아직 바닥 안 쳤다.” = 지난 13일 미 증시가 1000포인트가량 급등했다가 다음날 다시 떨어지는 등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 폴슨 재무부 장관이 증시 개장 전 아침부터 성명을 발표하고 이제 더 이상 금융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장담을 한 것에 비해 미 증시의 호응은 지나치다고 할 만큼 소극적이었다. 13일 3대 지수가 10% 이상 급등한 것에 대해서는 증시가 바닥을 쳤다는 쪽보다는 지난 주 지나친 하락에 따른 기술적인 반등이라는 쪽이 조금 더 많은 실정이다.
일부 사람들은 인지하겠지만 현지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금융 구제 방안(bail out)이라는 말보다는 ‘금융 안정 방안(stabilize)’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쓴다. 이것이 7000억달러를 투입하더라도 구제는 어렵고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는 최소한의 안정화만 가능한 현 미국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의 대위기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든다. 지난 8일 폴슨 재무부 장관이 성명을 통해 7000억달러 자금은 금융 기관 모두의 파산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파산하게 될 금융 기관들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혼란에 빠지거나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즉 안정화를 위한)이라고 밝혔고 2500억달러 자금이 미국 최대 9개 은행에 한정된 것에서 보듯이 수많은(1000여개) 중소형 은행들의 줄 파산이 예고되고 있다.
◇ 은행, 유동성 확보에 총력 = 한때 런던 은행 간 대출 금리(리보)가 5.375%까지 치솟아 3개월 달러 대출 리보 금리 4.524%를 역전시켰다. 은행 간 대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은행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에도 대출을 극도로 제한한다. 이는 제조업체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진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과 같은 초대형 제조업체들은 판매량 급감으로 현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마저 여의치 않아 고민하고 있다.
주택 대출은 심각성이 가히 예측 불허다. 미국 내 주택 보유자 중 약 1200만가구(전체의 16% 수준)가 현재 주택 감정가보다 상환해야 할 대출금이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올해 6월 기준으로 주택 대출금을 연체하거나 주택을 압류당한 사례가 9%를 넘어선 상황이다. 앞으로 주택 가격이 15∼20%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택을 포기하거나 압류당해 부실 주택 대출을 양산시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 대출을 근거로 만들어진 모기지 연계 증권의 부실규모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1조5000억달러를 넘어선다.
◇ 난관론과 비관론, 결국 새 리더십에 기대 = 이런 상황에서 미 재무부가 금융 기관에 대한 직접 자본 투자로 전략을 바꾼 것은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미 정부로부터 유동성 지원을 받게 될 대형 은행 간 대출도 어느 정도 활성화하면 유동성 위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헤지 펀드는 올해 말까지 증시가 어려울 것이고 내년에도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8일 연속 하락, 700포인트 하락, 1000포인트 상승 등 미국도 이머징 마켓이 됐다는 비야냥은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확보된 유동성 자금을 ‘위험한(?)’ 대출로 연결하기보다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증권 관련 부실 자산에 의한 손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차원으로 움켜쥐고 있는다면 시나리오는 달라진다. 금융 시스템, 특히 대출 영업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구제 금융 법안 통과 전에 미 경제학자 3명 중 2명이 미국이 경기 침체에 들어섰거나 들어설 것으로 판단했다. 금융 위기를 넘어 실물 경제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대출 구매, 신용 카드 구매 등으로 구성되는 소비자 신용 소비 규모가 8월에 들어 거의 10년 만에 감소하는 등 소비자 금융 시장에 적신호가 나타났다. 정책 금리 인하(현재 1.5%, 0%까지 가능)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경제 공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지도 않은 의심을 하게 된다. 신용 경색이 개인과 자영업자들로 확산되고 있으며 실업률 급증으로 자동차 대출, 카드 대출의 부실 심화도 우려된다.
관건은 전무후무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미 정부가 의도한 대로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구제)시켜 주택 가격 안정과 모기지 부실 감소를 이룰 수 있는지다. 현 월가의 금융 위기가 소비자 신용 위기로 확산되면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미 정부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서처럼 무한정 달러 인쇄를 강행하더라도 사태 진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 시스템은 진정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자신들의 노후자금과 자녀 학자금을 30% 이상 허공에 날려버린 미국 시민의 허탈감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은 여전히 커져만 가고 있다. 현 경제 위기로 11월 대선은 수십년만에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임 대통령과 재무장관이 어떤 후속 정책으로 금융 위기를 타개할 것인지 새로운 리더십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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