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당초 내년 상반기로 잡았던 세계 최대 11세대 LCD 라인 신규 투자 규모를 하반기 부지 조성을 위한 ‘공사비’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또 연내로 예정했던 8세대 LCD라인(8-1)의 증설 투자 규모도 줄이는 동시에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최근 이상완 사장이 “(내년 투자를) 올해보다 긴축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힌뒤 삼성전자의 투자 실종을 우려했던 목소리가 벌써부터 현실화한 분위기다. 특히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IT 투자를 견인해왔던 LCD 산업마저 투자가 사라질 경우 장비·부품 등 관련 후방산업군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됐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2010년 초 가동을 목표로 내년 상반기부터 11세대 LCD 패널 라인 신규 투자를 단행하려던 계획을 최근 대폭 축소 조정하려는 움직임이다. 공장 부지와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비 정도만 소규모 반영하고, 그나마도 하반기께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내년 LCD 패널 시장이 침체되더라도 비슷한 시기 10세대 LCD 패널 양산 라인을 가동하는 일본 샤프에게 1위의 자존심은 빼앗기지 않겠다던 게 불과 얼마 전까지 삼성 내부의 시각이었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급변한 시황 탓에 투자 방침이 돌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금처럼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면 샤프가 양산 가동 시기를 늦추지 않겠냐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8-1 LCD 패널 라인 증설 투자도 시점 연기와 함께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월 6만장 규모의 8-1 2단계 LCD 라인에 월 3만장 규모의 생산능력을 추가하기로 하고, 다음달부터 장비를 발주하기로 협력사들과 협의했었다. 그러나 최근 투자 시점을 내년으로 연기하고 그 증설 규모도 2만장 수준에서 동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경영 환경이 극도로 불투명해지자, 이달들어 삼성 내부적으로는 내년 경영계획을 전면 재수립한 결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년도 투자에서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 “전사 경영계획에 맞춰 투자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련 장비 산업에 실제 혜택을 줄 수 있는 LCD ‘설비투자’는 극도로 위축될 전망이다. 협력사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이 같은 움직임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울상이다. 한 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최근까지 8-1 2단계 증설 투자를 준비하라고 (삼성전자가) 주문했는데 갑자기 중단된 상황”이라며 “특히 삼성전자의 11세대 투자는 업계를 통틀어 사실상 유일한 내년도 신규 투자인데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이상완 사장과 권오현 사장 등 삼성전자 주요 CEO들이 내년 투자 축소를 시사하자, 매쿼리증권은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내년도 메모리 투자는 올해보다 최대 20%, LCD 투자는 최대 50%까지 각각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