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국가 미래 바꾼다](4)기술, 연구실 밖으로

[기술이 국가 미래 바꾼다](4)기술, 연구실 밖으로

  ‘닫힌’ 기술은 발전이 없다.

여러 주변 산업 분야와 함께 진화하고, 때론 인문·사회과학·예술의 경계까지 넘나드는 기술이 되지 않고서는 ‘융합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기술로 완성되는 일이 불가능하다.

기술이 연구실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융합’과 ‘기술가치 실현’에서 찾는다.

우선 융합은 전 산업의 패러다임이 이동하듯, 그 바탕이 되는 기술도 융합의 방향으로 발전해야만 미래를 담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단적으로 하나만 파고드는 기술은 이제 시장에서든, 수요자에게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산업 간 칸막이를 뛰어넘어 서로의 질적 변화를 이끌고,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대접받는다.

‘기술의 가치’는 연구실 문을 나서면서 본격 실현된다. 기술이 제품으로 만들어지거나, 서비스로 사업화될 때 비로소 기술은 완성된다. 여전히 기술의 가치는 현저히 평가 절하됐다. 이를 개선할 제도적인 뒷받침도 미진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평가된 값어치만큼 응당히 지급하고 기업이 사업화해서 산업을 키울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거의 이견이 없다.

◇ “칸막이를 넘어서라”= 김용근 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은 ‘융합’ 전도사로 안팎에 정평이 나있다. 김 이사장은 서울대 공대와 예술대, 의대와 사회대가 함께 실험에 나선 ‘학문영역 파괴’를 우리사회와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아주 획기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김 이사장은 “공대생은 공대의 울타리를 넘어 미술과 음악을 하는 예술 영역과 만나면서 새로운 창의력을 만들어낼 것이며, 의학 분야는 재료·화학 등 공학과 만나 바이오나노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앞으로의 기술은 서로 다른 것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지론이다. 이는 국책 연구개발(R&D)사업에도 고스란히 녹아들게 된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만들어지고, 독식하는 시대는 끝났다. 과감히 주변의 영역에 손을 뻗치고 그 영역과 연계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 국가 기술과제를 따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도 하다.

◇ ‘기술 금융’을 꽃피우자= 아무리 기술을 가진 중소·벤처기업도 금융권 문을 두드릴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이 대표자의 재산 또는 부동산 담보물 등이다. 기술을 아끼려고 뒷춤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내놔봐야 ‘기술’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톱 클래스의 기술 주도국이면서도 유독 기술의 평가, 기술 금융 수준에서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술은 산업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천임에도 그 가치는 사실상 종이 쪽지 정도의 수준에 그친다.

기술 금융의 부진은 제대로 된 기술을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기도 하다. 기술 금융이 발전할 수도록 기술은 연구실을 나와 기업과 산업계, 학계로 널리 유통되고 퍼져나갈 수 있다. 그러면서 ‘이종 간 교류’와 ‘새로운 기술의 재탄생’ 기회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기술전문 펀드 매니저는 “우선 객관적인 기술 평가 및 그에 기초한 거래를 관장하는 기관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지금은 평가를 금융 쪽에서 신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술 보유자(기업)들도 그 평가 기준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진호기자 jholee@

◆기술기업 장터 `테크보드`



앞으로 장외 증권거래시장에 기술기업을 위한 장터가 선다.

정부와 금융 당국이 손잡고 프리보드에 설립해 운영할 ‘테크보드(tech board)’가 바로 그것. 이 시장이 본격 활성화되면 기술 기반 우량 중소기업이 장외 시장상장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훨씬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테크보드란 일반기업부와 벤처기업부로만 나뉘어 있는 장외 시장(프리보드)에 ‘기술(tech)’ 기반 중소기업의 차별성을 제고하기 위해 별도로 만드는 투자 영역이다.

엄격한 잣대를 통해 기술력과 성장성을 검증하기 때문에 앞으로 기술 중심의 자본 투자 활성화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지방의 첨단 기술산업 요람이자, 그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테크노파크협의회가 중심에 서고, 증권업협회가 기업을 선별해 테크보드에 기업을 올려놓게(상장하게) 된다. 그러면 투자자는 지금까지처럼 높은 수익을 바라고 몇 값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도 없고, 성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면 된다.

반대로, 기업 처지에서는 자금조달에 대한 조바심 없이 기술개발과 사업화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오히려 기술 개발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려는 노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

이 테크보드에는 올 연말까지 17개 지역 테크노파크(TP)가 예비지정한 500개 기업, 내년부터는 매년 200∼500개 기업 가운데 엄정한 심사를 거쳐 20∼50개 기업이 상장될 예정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기술 개발 이후 사업화 단계 직전에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기술 기업에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기술 관련 투자와 캐피털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함께 특허기술에 대한 거래와 유통도 활발해진다.

‘특허권을 신탁받아 특허권 또는 실시권의 이전, 기술료의 징수 및 분배 등의 관리업무를 행하는’ 특허신탁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

이에 따라 대기업이나 대학·연구소 등이 보유한 미활용 특허의 이전 및 사업화가 본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에 따라 대학·연구소·기업의 지식재산 창출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증가해 왔으나, 상대적으로 사업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특허의 비율이 높아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허기술시장 관계자들은 “신탁기관이 다수의 특허보유자에 분산된 미활용 특허를 통합관리하기 때문에 탐색·거래 비용이 훨씬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