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내 골프 스코어는 82타에서 87타 사이에 있다. 이상하게도 라운딩을 자주 나가나 몇 달에 한 번 나가나 큰 차이가 없다. 드라이버가 기가 막히게 맞는 날이 있다. 거리도 평소보다 멀리 나갈 뿐더러 페어웨이 정 가운데 똑똑 떨어지는 날이 바로 그날이다. 이런 날 스코어가 좋아야 하는데 나중에 스코어 카드를 보면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된 이유는 드라이버가 잘 맞는 날 아이언 샷에서 자꾸 뒤땅을 치거나 그린 앞의 깊은 벙커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또 어떤 날에는 10∼30m 짧은 칩샷이 그림같이 핀에 붙는다. 이 정도라면 수도 없이 파를 해야만 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퍼팅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이래저래 스코어는 항상 평균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을 통계학에서는 ‘평균 수렴의 법칙’이라는 거창한 용어로 부르고 있지만 골프를 하는 사람은 몸으로 이 법칙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잘 되는 것만 모은 날이 있기는 하다. 이런 날의 스코어를 일러 ‘라이프타임 베스트 스코어’라고 부른다. 평생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기회다. 나에게도 7, 8년 전 이런 기회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그때 73타를 기록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면 스코어를 극적으로 줄이는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 드라이버가 잘 맞는 날에는 세컨드 샷을 소극적으로 때리는 것이다. 즉, 투 온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한 클럽을 짧게 잡고 벙커를 피해서 그린 입구에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칩샷으로 핀에 붙여 파를 노리는 전략을 구사하면 된다. 칩샷이 짧으면 퍼팅으로 파를 노린다. 그것조차 안 되면 그 홀은 보기로 막고 지나간다고 생각하자.
드라이버가 잘 안 맞는 날이 있다. 자꾸 슬라이스가 나서 오른쪽 러프에 떨어지거나 아예 언덕 비탈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 이런 날은 드라이브 샷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른쪽 언덕에 놓인 라이가 나쁜 볼을 가지고 무리하게 그린을 노릴 것이 아니라 그린 입구에 보낸다고 생각하면서 역시 소심하게 골프를 친다. 이런 소심한 공략법이 스코어 카드를 디지털(0과 1만 쓰여 있는 스코어 카드)로 만들어 준다.
처음 가는 골프 코스에서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때가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지형지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조심하면서 소심하게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좋은 스코어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골퍼는 내 이론에 논박을 하면서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소심한 골프는 안 친다. 푸른 하늘을 가르면 날아가는 시원한 샷을 보는 것이 골프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게 다 남 들으라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스코어 한 타에 목숨을 거는 게 골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