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겠다.” 박남규 코원시스템 사장(44)이 창업 이 후 고집해 온 철학이다. 벤처 1세대에 ‘거원’ 이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코원은 창업 15년을 앞둔 ‘관록 있는’ 기업이다. 벤처, 특히 단말 분야에서 한 해에도 수없이 많은 기업이 부침을 거듭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코원은 ‘10년을 넘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근근이 목숨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승승장구했다. 탄력을 받은 성장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안팎의 경영 환경이 어려웠지만 2004년 매출 785억원에서 2006년 759억원, 지난해 95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사상 처음으로 ‘4자리’ 매출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는 박 사장의 ‘기술 중시’ 철학이 주효했다.
# ‘제트 오디오’로 회사 기틀을 잡다
“기술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대학 시절 미국 애플이나 HP처럼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일구고 싶다는 게 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자금은 없지만 기술만큼은 뒤처지지말자는 일종의 오기가 있었습니다.”
MP3플레이어와 휴대형 멀티미디어 단말기(PMP) 분야에서 간판 업체로 우뚝 선 코원시스템. 박 사장은 LG전자 연구원 시절인 30대 초반, 겁없이 창업을 결심했다. 지금은 미국 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당시 대학 동창생 정재욱 사장과 함께 ‘홀로서기’에 나섰다. “궁극적으로 가야할 방향을 멀티미디어로 정했습니다. 돈이 없어 일단 손쉬운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눈을 돌렸죠. 직장 생활하면서 모아 둔 2000만원 ‘쌈짓돈’이 전부였습니다. 그 돈도 대부분은 사무실 얻는데 쓰고 집에서 사용하던 컴퓨터와 중고 장비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개발한 제품이 전자앨범 소프트웨어 ‘제트 앨범’이었다. 이어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 ‘제트 토크’를 세상에 공개했다. 두 제품 모두 상용화하기는 국내 처음이었다. 제트 토크는 삼보컴퓨터·현대전자·세진컴퓨터 등에 50만 카피를 번들로 공급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후 코원을 세상에 알린 것은 파일 재생 프로그램 ‘제트 오디오’였다. 박 사장은 지금도 제트 오디오에 보내는 사랑이 각별하다.
“제트오디오는 음악 파일과 동영상을 한꺼번에 재생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었죠. 당시 소프트웨어를 특별히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미국 IT전문 사이트에 이를 올렸습니다.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순식간에 다운로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경쟁 소프트웨어인 ‘윈엠프’에 비해 조금 늦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제트오디오를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제트오디오가 오지로 불렸던 아프리카· 중동까지 팔려 북한 빼고는 전 세계에 유통되지 않은 지역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한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정식판이 나오기 전에 해킹한 ‘짝퉁’ 중국어판이 정품처럼 버젓이 나돌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일본 IBM· 후지쯔· NEC의 모든 PC 기종에 제트오디오가 기본 장착할 정도로 기술과 품질을 인정 받았습니다. 제트오디오 소프트웨어 하나로 SK텔레콤에서 투자를 유지했고 미국 현지 법인을 세우는 등 지금의 코원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 기술로 시장을 주도하다
그러나 출시 4년 만에 제트오디오 불법 파일이 돌면서 소프트웨어 판매가 급감하자 박 사장은 과감히 사업 방향을 틀었다. “소프트웨어는 한계가 보였습니다. 결국 하드웨어로 뛰어 들기로 결정을 내렸죠.” 당시 그가 주목한 제품이 ‘MP3’였다. “아날로그 음악이 빠르게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디지털 음원을 재생해 주는 단말기가 크게 주목 받을 때였죠. 게다가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고 인프라를 빠르게 늘려 나가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방향은 결정했지만 제품이 문제였다. 후발 주자인데다 군소업체가 난립해 비슷한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온 제품이 바로 MP3 브랜드 ‘아이오디오’를 세상에 알린 ‘올 인 원(All in one)’ 모델이었다. “작은 제품에 모든 기능을 집어 넣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제품을 기획하는 데만 6개월을 투자했죠. 결국 MP3· FM라디오· 비디오 재생 기능을 모두 넣는 데 성공했고 이 컨셉트는 지금도 ‘MP3 표준’으로 불릴 정도로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제품은 해외에서 반응이 대단했다. 특히 ‘워크맨’의 본 고장 일본에서 값진 성과를 올렸다. 당시 일본은 워크맨· MD 제품이 음악 재생 단말기 시장을 주도해 MP3가 들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입점 6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기술력과 자신감 때문이 가능했다는 생각입니다. 기술력이 없는 기업은 속도가 빠른 시장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게 ‘시장 타이밍’ 즉 ‘속도’ 입니다. 둔화한 조직이 아닌 시장과 고객의 수요를 정확히 판단해서 빠르게 실행에 옮긴 게 지금의 코원을 만들었습니다.”
# 해외가 진짜 승부처다.
이 후 2003년 코스닥에 기업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인 코원은 MP3에 그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2006년 PMP와 내비게이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올해에도 울트라 모바일 컴퓨터(UM PC), 온라인 게임 등에도 진출했다. 단말 사업은 결국 콘텐츠가 생명이라는 판단에서 SBSi· 다음 등과 손잡았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올해 경기 불황으로 시장에 찬바람이 불지만 기대 이상으로 ‘선방’하고 있다. “MP3, PMP, 내비게이션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라인 업을 늘리고 있습니다. 제품마다 프리미엄급에서 고유 기능에 충실한 실속형까지 확대해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코원은 먼저 MP3사업은 출시 이 후 1년 2개월 만에 프리미엄 제품으로는 드물게 30만대를 돌파한 ‘D2’ 후속 모델을 개발 중이다. PMP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5인치 프리미엄급으로 출시한 ‘Q5’에 이어 ‘P5’, ‘O2’를 연이어 출시했다. 내비게이션도 홈쇼핑에서 최고 인기 상품이었던 ‘L2 TPEG’ 명성을 잇기 위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더 강화한 차세대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박 사장이 제품 보다 더 관심을 두는 건 역시 해외다. “이제는 해외 무대에서 비전을 세워 글로벌 업체로 도약할 때입니다. 일단 수출 비중을 절반으로 끌어 올리는 게 당면 과제입니다. 그동안 쌓은 사업 노하우와 기술력을 결합하면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입니다. ” 박 사장은 비록 해외 시장에서 코원 브랜드는 약하지만 제트오디오를 제작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해외 바이어도 놀라움을 표현할 정도라며 주변 분위기는 무르익어 있다고 자신했다. 코원은 미국·일본·인도네시아에 해외 지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창업 이 후 다행히 적자 한 번 없었습니다. 제트오디오 덕분에 미국· 일본·중국· 유럽·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 대부분의 지역에 거래 선을 두고 있습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한 국내에서도 MP3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다음으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터운 소비자 층과 인지도 그리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멀티미디어 분야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95년 창업한 코원은 대략 5년 주기로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었다. 제트오디오를 개발한 이 후 2000년 MP3 통합 모델을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어 2003년 코스닥에 등록하고 2005년 거원에서 ‘코원시스템’으로 이름을 바꿨다. 코원 입장에서 전략 품목인 ‘PMP 1호’ 제품을 출시한 시점도 2005년이다. 다시 얼추 5년이 되는 내년, 내 후년 해외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겠다는 박남규 사장의 자신감을 결코 ‘빈 소리’로 흘러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박남규 사장은
코원시스템 내에서 박남규 사장은 ‘황금 귀’로 통한다. 황금 귀는 그만큼 소리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장인 수준은 아니지만 전문가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박 사장은 MP3 초기 개발할 당시 MP3에 맞는 여러 회사의 이어폰을 시험하면서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중국 혹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했는 지 여부를 구별해 내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박 사장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이 후 그는 LG전자 영상미디어 연구소, 코원 사업 초기 음성소프트웨어, 이어 멀티미디어 오디오 재생 소프트웨어, MP3까지 줄곧 소리와 관련한 사업에 몰두해 왔다. 이 덕분에 코원은 MP3업계에서 음질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박 사장의 신념도 한 몫 했다. 그는 우수한 음질을 재생해 내는 것이 제품 차별화로 이어진다고 확신하고 있다. 코원 제품의 대표 기능인 1조 2000억 가지의 음색을 소비자 취향에 맞춰 조절 할 수 있는 ‘제트 이팩트’ 기술도 이런 박 사장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