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사방에서 들려오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와 그 파장이 이 곳 실리콘밸리의 중심부를 흔들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은 수많은 IT 및 바이오 벤처의 본사 또는 연구소가 많은 일자리를 공급해주고 든든한 벤처캐피털의 자금 지원으로 고액 연봉자들 또는 스톡옵션을 통한 부자들이 끊임없이 늘어가던 곳이었다. 집값 역시 올여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나홀로 강세’였다. 서브프라임 사태 역시 월가의 무리한 돈놀이로만 쉽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IT를 논의하고 미래를 토의하던 엔지니어들의 대화 주제가 회사의 주가, 직장 일자리의 안정성, 주택대출금, 줄어든 은퇴 연금 등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여기는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버텨 보자는 식이었다. 실리콘밸리 쪽은 기업이 사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고(layoff)’를 통한 대폭의 인건비 및 사업축소가 첫 순서고 기본 정석이다.
월가의 투자은행은 최첨단 보안, 컴퓨팅, 네트워크 등 신제품이라면 아낌 없이 채택해주는 주머니가 든든한 부자 고객이었다. 그들이 아예 사라져 버리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니, 그동안 들인 영업비용, 기술개발 비용, 장밋빛 예상 수익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주가가 수년 전 시장 규모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현상이다. 시장 규모가 줄어들면, 개발비용, 인력 규모를 줄이는 것도 당연하다.
나 역시 고민이 깊다. 후진국을 대상으로 하는 초저가 데스크톱 가상 컴퓨터 회사여서 경기에 영향도 덜 받고, 각국 정부가 배정한 예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니 안정적이다. 아니다. 유명 회사들의 주가가 반토막이 되고, 고급 인력들이 하루아침에 잘려 나가는 데 공격적인 성장 전략이 괜찮을까. 중장기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전략 수정에 골몰하다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고객층을 100여개국으로 확대, 나름대로 외풍에 대비해뒀다고 생각하다가도 우울한 경제 뉴스를 보노라면 폭우가 쏟아지는 아프리카 정글 속 어느 큰 나무 밑에서 비그칠 날만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제품을 팔아주는 여러 나라 판매 파트너들을 만나고 우의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말에는 아프리카 가나공화국까지 날아가 오랫동안 공들인 계약건을 마무리하고 진심 어린 감사도 해야겠다. 160명의 직원이 12개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작금의 달러 강세가 미치는 각국 고객들의 수입 가격 부담도 생각해야겠다.
지금 우리는 경쟁자의 실패가 기쁨이 되는 상대적인 경쟁 시대가 아니다. 길을 잃은 표류자들과 함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폭우 속 아프리카 밀림을 걸어가는 절대 생존 게임 상황에 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는 들리는데 맹수에 쫓기는 것인지 함정에 빠진 것인지 제대로 볼수도 없는 상황이다.
카멜레온을 생각하게 된다. 주변 색깔을 맞춘 빠른 적응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먹이가 보이면 재빨리 낚아채는 속도전으로 비즈니스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밥인지 독인지 빨리빨리 판단해야 하고 기회가 생기면 깔끔하게 마무리해 다른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확실하게 굳히기를 해야 한다. 실리콘밸리 대기업은 해고함으로써 몸집을 줄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우리와 같은 작은 벤처는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사람을 비용이 아닌 고정 자산으로 봐야 한다. 고정 자산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효과나 생산성이 달라지므로 조직 내 리더십 그룹의 역할과 조직원의 단결이 절실하다.
끝으로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한다. 돈을 쓸지 안 쓸지는 인터넷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고객의 입에서만 나온다. 영업의 능력은 얼마만큼 팔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고객과 만나고 직접 대화했는지가 될 것이다. 비가 멈춘 후 어디로 뛰어가야 할지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밀림 속 사자와 대면해도 밀리지 않을 ‘악바리’ 정신이 필요하다. 비는 언젠가 멈추고 무지개는 반드시 떠오른다. 어느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살아서 돌아오라.”
송영길 (엔컴퓨팅주식회사 창업자 및 운영책임자) young@ncomput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