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한 보안업체 인사담당자 세 명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해커를 채용하고 싶어서였다. 면접을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아온 그들은 10여명의 해커를 만나고 이 가운데 몇몇의 채용을 결정했다.
삼고초려까지는 아니지만 해커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에는 영상회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글로벌 면접은 영상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력을 늘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인사담당자들은 해커 동아리 회원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어울리면서 이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방식의 면접을 진행했다. 해커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돼 해외에서는 평생을 해커로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취미생활이 아닌 해킹이 ‘업’인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직업으로 치는 피아니스트가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더 출중한 것과 마찬가지다. 환경이 ‘질 좋은’ 해커를 양성해 내는 것이다.
국내 해킹대회와 다른 나라의 해킹 대회의 면모에서도 그 차이는 금방 드러난다. 전 세계 해커 8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프콘에서는 고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 층의 해커들을 만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능통한 천재 해커들은 물론이고 수십년 동안 컴퓨터를 공부한 전문가 해커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해킹 대회는 대부분 대학생들의 잔치다. 기껏해야 30대다. 이런 대회에서 조명을 받는 것도 10대 해커.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학생의 능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오랜 기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아온 전문 해커가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해커들은 흥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나이 들어서 ‘해킹’을 계속하는 것이 힘들어서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에서는 해커를 ‘전문가’로 대접하면서 그들의 컨설팅과 진단을 받는 데 그만큼의 대가를 지급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학생 해커들은 미국이나 일본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한 한 해커는 “해커들의 문화를 이해해 주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미국에 취업을 하고 싶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해커 배상우씨는 “국내에 해커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은 30∼40명 정도”라며 “해킹 전문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몇이 있긴 하지만 한국 풍토에서 이를 ‘업’으로 삼기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해커가 전문가라는 인식은 기업의 프로세스에서도 드러난다. 해외 소프트웨어나 장비 또는 보안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해커들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고 있다. 취약점을 발견했을 때 즉시 신고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공간을 만들어 놓거나 메일 주소를 공개해 놓는다. 보안 취약점에 의구심이 들었을 때 질문 메일을 보내면 빠르면 하루 만에, 길어야 일주일 안에는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 해커는 “대만의 한 회사에 취약점 관련 메일을 보냈더니 단 하루 만에 매우 정중한 메일이 도착했다”며 “국내에서는 일단 연락처를 찾는 것도 어렵고 개발팀에 메일을 보내면 이를 무시할 때도 많아 오히려 홍보팀에 이를 알려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