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LCD 장비업체들은 삼성전자가 내년 설비 투자를 축소할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자 긴축 경영을 축으로 한 비상경영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대부분의 장비업체 경영자들은 “올 것이 왔을 뿐”이라면서 애써 담담해 했지만 닥쳐올 한파에 대한 우려의 표정을 지우치 못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LCD 시황 회복전망이 불투명한 탓에 이미 올해 전체 투자를 당초 계획 12조5000억원에서 소폭 축소한 것의 연장성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투자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고 내다봤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 투자 축소에 대비해 나름대로 준비해 왔다”며 “신규 사업를 재검토하는 등 경영 전반에 걸쳐 효율적인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얼마전 삼성전자 구매담당 임원이 ‘내년 굉장히 추울 테니 1년 동안만 버티어 살아남아야 한다’고 격려했다”고 전했다.
업계는 내년 삼성전자의 투자 위축을 계기로 장비·소재 기업에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LCD·반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경영난에 봉착, 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고환율 시대에 국내 기업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만큼 우수 기업은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기업들은 긴축 경영 속에도 선행 기술에 대한 R&D 투자만큼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내비쳤다.
한 LCD 장비 관계자는 “삼성전자 한 임원이 ‘지금 투자 안 하면 나중에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고 당부했다”며 “삼성이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줄인다고 했지만 차세대 제품의 개발에 대한 투자 계획에는 변화가 없어 선행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 불경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도 “미래에 대한 R&D 투자 계속해 나가고 현 상황이 1년 정도 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내부적으로 비용을 최소화하고 체질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은 지난 24일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7조원 이상으로 예정됐던 메모리 투자가 소폭 줄어들었다”며 “내년 경기 상황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투자 규모는 최종 결정되지 않았지만 수천억원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은 D램 시장 불황이 내년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라는 분석과 200㎜ 라인 하나를 300㎜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5개의 200㎜ 라인에서 DDR1 D램, 노어플래시, 원낸드, P램 시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활용도가 높으나 일단 1개 라인부터 300㎜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생산 품목과 가동 시점을 공개하지 않았다.
안수민·설성인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