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오르셰 미술관, 베르사유 궁전, 노트르담 대성당 등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명소가 즐비하다. 이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고, ‘문화의 공장’으로 불리는 퐁피두센터와 파리시 근교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이 그 뒤를 잇는다. 파리에서 네 번째로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은 프랑스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라빌레트 과학산업관(Cite de Science et de Industrie)’이다. 유럽 과학관의 원조로 꼽히는 라빌레트는 이곳을 과학기술 전당으로 육성하기 위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개관 20여년 만에 파리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됐다.
라빌레트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마리 소피 뮤지카는 “연간 방문객이 400만명을 넘었고, 이는 평균 하루에 1만여명이 다녀가는 셈”이라며 “프랑스인을 제외한 외국 관광객 방문비율도 15%를 넘는다”고 말했다.
◇놀이와 과학의 만남=라빌레트는 유럽에서도 체험형 전시를 뜻하는 ‘핸즈온(hands-on)’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 중 하나다. 직접 만지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지향한다.
특히 어린이들이 과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1층에 위치한 대형 전시장을 ‘어린이들의 도시(Children’s City)’로 꾸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린이관은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과학원리를 체험과 놀이로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데 주안점을 뒀다.
어린이관은 1992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대성공을 거두면서 라빌레트 발전사에 큰 획을 그었다. 2∼7세까지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공간과 5∼12세까지의 아동을 위한 공간으로 구분된다.
유아 공간에서는 ‘자아발견’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키와 몸무게를 직접 재보고, 여러 가지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을 따라해볼 수 있다. 터치스크린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통해 가상 캐릭터를 만들고, 첫 만남과 대화 등의 사회성을 기르기도 한다.
전시관 한쪽에는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조립하고 만들어 볼 수 있는 미니 공사장이 설치돼 있다. 모형 벽돌과 손수레, 각종 공구 등을 갖추고 있다.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만들고, 혼자하기 어려운 일은 힘을 합침으로써 협동심도 쌓는다. 또 공사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안전복과 안전모를 필수적으로 갖춰야 해 안전의식도 학습한다.
◇참신하고 새로운 전시=라빌레트 내부 전시관은 크게 상설전시관과 임시전시관으로 나뉜다. 상설전시관은 1만㎡의 공간에, 약 1100점의 체험형 전시물이 갖춰져 있다.
2층과 3층에 위치한 임시전시장에서는 6개의 기획전시가 열린다. 각 기획전시는 전시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으며, 수시로 전시내용을 바꿔주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전시물의 빠른 교체는 방문했던 관람객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실제로 지난 2006년 라빌레트 전체 방문객 중 44%는 한 번 이상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는 에너지·성교육·인간과 유전자·자동차·빛의 착각·GMO 식품 등이다. 이 중 자동차 전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차량 제조사인 ‘시트로앵’과 제휴해 시트로앵 전시관에 있던 차량을 옮겨와 전시하고 있었다. 과학관 측에서는 전시 품목 다양화와 금전적인 협찬이 가능해 유리하며, 기업 역시 홍보효과 등을 거둘 수 있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식이다. 뮤지카는 “필요하면 기업들과도 적극적으로 제휴해 공동 전시 등을 기획한다”고 설명했다.
◇풍부한 인력과 재정=라빌레트가 개관 20여년 만에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인력과 정부의 예산지원이 맞물린 결과다. 현재 직원 수는 1000명이 넘으며, 이 중 90% 이상이 정규직이다. 직원들의 전공 분야는 전시·기획·과학 등으로 다양하며, 박사급 인력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우수한 기획전시와 빠른 전시 교체주기도 충분한 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지난 2006년 총재정은 운영예산(104억유로)과 투자금(13억유로)을 합쳐 총 117억유로(약 2122억원)나 된다. 재정 중 23%는 입장료·제휴·자체사업 등으로 자체 조달했으며, 이 비율은 매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자체사업은 기획전시나 전시장 구성 등을 수출하거나 연구용역을 통해 발생한다. 일례로 유아관에 있는 공사장 컨셉트의 전시장은 폴란드 등으로 수출했으며, 블록형으로 구성해 손쉬운 전시물 교체가 가능한 임시전시장도 수출하고 있다.
파리(프랑스)=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은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라빌레트 공원 안에 과학관과 음악당이 함께 있다. 공원은 35만㎡(10만5000평)의 용지에 조성됐으며, 26개 장식 조형물과 10개의 테마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라빌레트 공원은 원래 1867년에 세워진 도축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후 1970년대 가축시장을 파리 교외로 옮기면서 빈민가로 남게 됐다. 파리시는 이 지역을 문화공간으로 재개발한다는 계획에 따라 과학관과 음악당이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드리안 펜실베르가 설계한 과학관 건물은 우주·물·빛을 상징하는 유리·콘크리트·철로 지어졌다. 1986년 3월 개관한 과학관은 5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실내에 13개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과학관 건물 밖에는 아이맥스 영화관 ‘제오드’, 움직이는 영화관 ‘시낵스’, 천문관 ‘플라네타륨’ 등이 있다. 또 실제로 사용됐던 아고노트 잠수함도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이 잠수함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70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연간 관람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 연구부와 문화부가 공동 관장하며, 양 부처 사이에서 교육부가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교육적인 부문이 강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