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역동성을 제공하는 벤처 씨가 마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최근의 코스닥 폭락과 관련한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의 진단이다.
기술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시장인 코스닥 폭락으로 상장사뿐만 아니라 예비상장사조차도 흔들리고 있다. 벤처산업에는 ‘생태계’라는 것이 있다. 크게 출범(창업 단계)해 연구개발(R&D)과 기술상용화 과정(성장 단계)을 거쳐 상장해 지속성장(성숙 단계)하는 3단계다. 이들 각 단계에는 또한 자금줄이 있다. 이 자금이 윤활유 역할을 해야 생태계가 돌아간다. 창업 단계에서는 정부가 창업자금으로 지원하고, 성장 단계에서는 벤처캐피털 업계 그리고 성숙 단계에서는 코스닥시장이 그 몫을 한다.
코스닥 침체로 세 번째 단계(성숙)뿐만 아니라 두 번째 단계(성장)도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벤처캐피털 업계가 투자에 나서지를 않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우량 벤처기업에 투자해 코스닥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자금 회수가 막막해진다. 결국 투자경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 코스닥시장이 신뢰를 잃으면 이후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막막해진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주로 전체 벤처펀드 자금의 90∼95%를 시장에서 조달한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개점휴업’ 상태에 몰리고 있다. 일부 이미 펀드를 결성한 벤처캐피털 업체는 초기 벤처기업 가운데 잠재력이 있는 곳만을 찾는 수준이다. 충분히 성숙한 회사는 적정한 투자비율 산정에 실패하기 일쑤다.
김종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장은 “최근 상황에서는 기업의 밸류(가치)가 크게 떨어져 있지만 어느 벤처기업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며 “밸류 차가 크다 보니 투자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서의 자금 경색은 자연스럽게 창업단계로 여파가 이어진다. 기술벤처기업의 창업 기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창업 후 수년 내에 벤처캐피털 또는 엔젤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더 키워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공사례가 그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감을 찾기 어렵다. 이른바 벤처 창업을 통한 ‘대박’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고, 이는 벤처 창업 부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조현정 벤처산업협회 고문은 “코스닥 폭락으로 비상장 벤처기업도 코스닥에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벤처정신을 북돋워야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벤처기업도 위기감에 빠져 있다. 단순히 자금조달이 막혔다는 차원이 아니다. 회사 경영에 전념을 해야 하지만 주주의 주가 하락에 대한 압박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아야 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 모 상장사 대표는 “주가의 급락으로 회사 값어치가 워낙 빠져 누가 악의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인수할까 우려된다”며 “차라리 상장을 포기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기술벤처기업의 씨가 마르는 것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벤처는 대기업과 함께 하나의 경제성장의 축으로 성장동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종 실장도 “벤처가 갖는 큰 의미는 역동성”이라며 “벤처가 기술의 제공자로서 대기업을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준배·이형수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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