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세계 최고의 첨단 과학기술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내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의 40∼50%가 실리콘밸리에 투자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기술과 자금의 중심이 되기 전에는 보스턴 과학단지가 더 활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부상과 무관하게 여전히 보스턴 과학단지에선 굴지의 글로벌 회사들이 MIT와 하버드 등 및 보스턴 인근 대학들과 활발한 산·학 협력을 펼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보스턴 과학단지는 보스턴 인근 128번 외곽도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비즈니스위크는 ‘뉴잉글랜드 고속도로’란 기사에서 이 128번 외곽도로를 ‘마술의 반원’이라고 표현했다. 1958년까지 6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대되는 동시에 주변 사업들이 크게 번성했기 때문이다. 1957년만 해도 128번 도로 주변에는 99개 회사에 1만7000명이 몰려 있었다. 그러다 1965년에는 기업이 574개, 1973년에는 1212개로 늘어났다. 기업이 몰리면서 이 지역은 1980년대 ‘매사추세츠의 기적’을 이끌어 내는 중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보스턴 첨단 기술 단지(hightech community)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발전과 함께 과밀화돼 128번 도로 바깥 쪽에 추가 외곽도로가 생기고 이 지역 또한 매우 활성화됐다. 지역적인 분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심에 해당하는 보스턴에 MIT와 하버드가 있다. 외곽도로에 해당하는 128번 도로를 따라 칼자이스, 아이로봇, 노벨 같은 회사가 포진해 있다. 또 495번 도로 인근에는 AMD, 보스, 인텔 등이 있다. 보스턴에는 이 외에도 금융 및 컨설팅 관련 회사가 많다. 128번 도로를 중심으로 창업된 업체는 주로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회사고 현재는 바이오 관련 회사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보스턴 과학 단지에선 학계와 기업들에서 활동 중인 한인 연구원 및 엔지니어가 많다. 이 중 터프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제30대 재미과기협 회장 성낙호 박사가 대표적이다. 성 박사는 지난 40년간 고분자 재료 및 계면학에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 미국에서의 기술 도입과 인력 교류를 주도, 한미 과학기술자의 교류협력으로 한국 과학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큰 역할을 한 것을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7년간 MIT 링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 한 후 코핀(Kopin)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근무하고 있는 최홍균 박사도 국내에 십 수 명 밖에 없는 IEEE 펠로로 활동할 정도로 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외에도 이 지역 학계와 산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인과학기술자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러한 한인 과학기술자들은 ‘재미과학기술자협회 뉴잉글랜드 지부(KSEA-NE)’를 통해 연례 세미나와 취업 박람회, 각종 강연회, 수학경시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지역 과학기술자들 간의 학문적 교류를 도모하고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부생 및 대학원생뿐 아니라 과학 꿈나무들을 위해 후진양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보스턴 지역이 바이오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 ‘뉴잉글랜드 생명과학협회(NEBS)’를 만들어 바이오를 전공하는 박사과정 및 포닥, 교수, 기업체 연구원들이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고 학문적인 교류도 나눈다. 반면에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K 그룹’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각자의 전공에 맞게 세세하게 분류된 소그룹에 속해 관련 산업의 현황이나 전망, 취업, 인적 네트워킹 등의 주제로 활발한 교류가 일고 있다.
최첨단 과학기술단지에서 활약 중인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과학기술적 연계를 모색하고자 함이다. 이 같은 시도가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도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보스턴(미국)=이재형 롬앤드하스 연구원, 공학박사(yijh00@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