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업계가 ‘엔고(円高) 직격탄’을 피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공장에서 쓰는 자동화 로봇장비는 모터, 감속기, 콘트롤러 등 핵심부품을 대부분 일본에 의존한다. 엔고 여파로 몇 달 새 주요 부품의 수입단가가 두 배 가까이 뛰자 로봇업체들은 급하지 않은 생산물량을 최대한 미루고 틈새상품 발굴과 수출확대에 매달리는 등 다양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최대 로봇제조사 현대중공업(대표 민계식)은 주거래처인 자동차 부품업계, LG디스플레이 등을 상대로 일제부품의 가격상승을 반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경쟁사보다 로봇부품의 국산화 비율이 높고 자동차 분야의 투자감소로 대규모 로봇납품건도 없어서 엔고 사태로 실질적 피해는 적다고 설명했다. 회사측은 엔고로 일제로봇의 가격이 치솟는 틈을 이용해 팔레타이징(중량물 이송) 로봇시장에 신상품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기업도 있다. TES(대표 안승욱)는 부품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당분간 대규모 로봇수주는 피하면서 신형 로봇장비의 R&D에 집중하고 있다. TES는 국내 첫 국산화한 8세대 대형진공로봇을 LG디스플레이에 시험 납품해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어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다. 안승욱 사장은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게 좋다. 내년에는 진공 LCD, 솔라셀 로봇장비에 회사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싸이멕스(대표 김성강)는 엔고로 국산로봇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자 유럽 로봇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이 회사는 이스라엘, 프랑스, 독일 로봇장비업체와 납품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다음달부터 제품개발에 들어간다. 싸이멕스는 현재 10%인 수출비중을 내년에는 35%까지 높여서 엔고파도를 넘어선다는 방침이다. 다사로봇과 로보스타 등 중견 로봇업체들은 일제부품 수입사들과 대금결제를 2∼3개월씩 늦추는 협상을 통해서 환율회복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유례없는 엔고 현상은 한국보다 일본의 산업용 로봇업계에 오히려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세계 경기가 극심한 불황인데 몇 달 새 로봇장비가격까지 30∼40% 오르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업용 로봇 제조사 제네시스테크놀로지, 프로듀스가 이달에 잇따라 도산했다. 아이텍, 도쿄일렉트론 등에 자동화 기기를 납품하는 로봇회사 YDK도 수주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석희 다사로봇 사장은 “엔고는 우리 로봇업계의 위기인 동시에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이다. 우리가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면 내년 산업용 로봇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