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뼈를 깎는 구조조정

 “9월 위기설이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었군요.” 한 자산운용사 사장이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다. 지난 10월은 한국 경제에 두고두고 기억될 시간들이었다. 월초부터 폭락을 거듭하더니 월말에는 ‘한미 300억달러 통화스와프 협정’ 소식으로 국내 증시가 후끈 달아올랐다. 증시, 환율도 패닉상태를 벗어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10년 전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흔들고 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살아난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나라는 삼성, LG 등 세계적인 제조기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는 하나도 없다”며 “투자은행(IB)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에 과연 기초체력이 있기는 한 것인지,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달라진 게 뭔지 의문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때와 다름없이 우왕좌왕하면서 불안감을 더 키웠고, ‘문제 없다’는 식의 말만 늘어놓았다. 은행들이 단기외채를 무작정 들여와 대출 늘리기에 혈안이었을 때도 금융당국은 두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은행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실을 떨쳐내기 위해 또 다시 정부에 손을 벌렸다.

 정부와 은행의 합작품에 애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려 공장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고, 서민들은 피땀 흘려 모은 자산이 디플레이션당하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지금처럼 엉성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으로는 IB는커녕 ‘외환위기의 재림’만 불러올 뿐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과 체계적인 리스크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우리 국민은 소중한 자산이 헐값으로 팔려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이형수·경제교육부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