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 일찍이 홍길동은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했다. PC업계에 21세기판 홍길동이 떴다. 넷북이 그 주인공이다.
인터넷 활용에 특화한 넷북은 성능은 낮지만 크기가 작아 들고 다니며 인터넷, 워드 작업을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인텔은 처음 넷북을 소개할 때 가격을 250달러 안팎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는 500∼600달러 안팎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PC 제조업체가 앞다퉈 성능을 끌어올린 미니노트북급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인텔은 “넷북을 미니노트북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인텔의 변은 이렇다. 넷북은 대다수 소비자가 가진 ‘노트북’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인터넷에 특화한만큼 일반적인 PC 성능을 내지 못하므로 새롭게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드디스크나 램 등 성능을 높여 출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미 시장에서 60만원대 저가 노트북을 구할 수 있는데, 성능 및 가격에서 차별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셀러론’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인텔은 초저가 프로세서인 아톰을 발표하면서 넷북을 소개했다. 넷북은 성능이 높아지면서 인텔의 저가 프로세서인 셀러론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멀티 코어·펜티엄·셀러론에 이어 새 시장을 열기 위해 만든 아톰이 오히려 셀러론과 싸우는 형국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넷북이 미니노트북인지 아닌지는 의미가 없다”며 “넷북을 굳이 인터넷에 한정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었다. 넷북의 성능이 높아진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요구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넷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도 정작 인텔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