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표준화 없인 ‘인터넷 강국’도 없다

웹 표준화 없인 ‘인터넷 강국’도 없다

대부분의 국내 인터넷 사용자라면 인터넷 쇼핑이나 뱅킹을 이용하던 중에 ‘Active X’라 불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두, 세 개씩 설치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Active X(이하 액티브X)는 위도우즈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마이크로소프트사(MS)에서 개발한 것으로 기존 응용프로그램으로 작성된 문서 등을 웹과 연결시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현재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익스플로러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국내 시장에서 이 액티브 X의 점유율은 95% 정도로 사실상 인터넷 이용을 위한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터넷 표준과는 거리가 먼 액티브 X가 향후 한국의 인터넷 성장의 발목을 잡을 장본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웹 기반 멀티미디어 편집 솔루션 개발 업체인 엔에이포(NA4)의 강송규 대표는 이 같은 우려를 뼈저리게 느끼는 IT 벤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내 웹 환경이 웹 표준화 없이 액티브 X에 의존한 채 진행된다면 3~5년 뒤 ‘인터넷 강국’이란 칭호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 액티브 X 천국 한국은 미래가 없다

강 대표는 처음 사업을 하면서 조금은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웹 표준화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상태였다. 당연히 웹 표준화에 대한 이슈도 없었으며 어느 누구하나 문제를 제기하려 하지도 않았다.

2004년 부터 강 대표는 새로 개발한 멀티미디어 편집솔루션을 공급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서버사이드 기술로 구현된 이 솔루션은 현재 많은 웹 사이트들이 액티브 X를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와는 달리 사용자 PC에 별도의 설치 작업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액티브 X 기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이미 한국에서는 90% 이상이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액티브 X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엔에이포(NA4)의 멀티미디어 솔루션은 국내가 아닌 미국 라이코스에 먼저 공급되는 조금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 대표는 “해외에서는 액티브 X 기반의 솔루션에 대해 성공률 0%라는 판단을 내리며 웹 표준화의 큰 물결을 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액티브 X에 의존하고 있다”며 “한국 인터넷 시장이 점차 전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웹이라는 국가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공간에서 어느 특정한 나라만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한국 인터넷의 미래는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시사했다.

◆ 액티브 X에 대한 인식 바꿔야

문제는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액티브 X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사이트를 이용하건 액티브 X 설치를 강요하다보니 이제는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한 의례적인 절차로 까지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강 대표는 “액티브 X가 인터넷 결제를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며 이를 대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강 대표는 “액티브 X가 선호되고 있는 것은 단지 사업자들이 쉽게 개발할 수 있고 그 운용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액티브 X와 같은 클라이언트 사이드 기반의 기술은 서비스를 구동하기 위한 툴 들을 사용자 PC에 설치 한다. 사용자는 해당 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위해 자신의 PC에 프로그램을 다운 받고 설치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서버사이드 기반의 기술은 이 같은 작업이 모두 사업자의 서버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만큼 사용자 PC의 부담은 줄어들게 되지만, 사업자들은 이를 위해 해당 콘텐츠를 일일이 서버에 올려야하고 스토리지는 물론 운영인력도 추가해야 한다.

결국 지금 액티브 X에 의존하는 시장은 인터넷 사업자들이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 부담을 사용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생긴 폐단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액티브 X는 보안상에도 많은 취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사용자의 동의 없이 해킹프로그램이 설치될 수도 있으며, 몰래 접근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액티브 X가 악성 바이러스의 배포 채널로 활용되기까지 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해외 인터넷 사업자들은 액티브 X를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MS 마저도 액티브 X를 점차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웹 표준화가 IT 벤처의 살 길

강 대표는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은 국내 웹 환경은 IT 벤처가 살아가기에는 매우 험난한 구조라고 밝혔다.

해외 사례를 보면 구글이나 마이스페이스는 오픈된 환경에서 어느 업체든 재미있는 솔루션을 공급해 서비스 할 수 있는 상생의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

반면 국내 대형 포털에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제휴를 맺고 기술의 소스를 공개해야 하는 것은 물론 광고 수익분배 모델도 없는 말 그대로 종속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중소 IT 벤처가 하나의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해외 서비스를 위한 표준화된 솔루션에서부터 국내 사업자들에게 맞춰진 솔루션, 그리고 모바일용 솔루션 까지 같은 솔루션을 수차례 개발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는 최근에 이슈화됐던 휴대폰 풀브라우징 서비스에서 잘 나타난다. 휴대폰 풀브라우징 서비스는 PC 인터넷 환경을 그대로 휴대폰으로 옮겨오는 서비스지만, 액티브 X에 기반 한 국내 사이트들의 경우 모든 서비스가 휴대폰에서 구현되지는 않고 있다.

웹 표준화를 진행하면 해결될 일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평 포털들은 웹 표준화보다는 풀브라우징을 위한 또 다른 미니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강 대표는 “웹이라는 열린 공간은 디바이스가 다르다고, 그리고 나라가 다르다고 다르게 비춰져서는 안된다”며 “비 표준화된 한국의 웹 환경과 종속적인 시장 구조가 중소 IT 벤처의 성장을 가로맊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터넷 성장 우리만의 잔치로 끝낼 것인가?

강 대표는 “과연 국내 인터넷 서비스 중에 해외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반문한다.

그에게 있어 한국은 더 이상 인터넷 강국이 아닌 초고속 인터넷 망만 잘 깔린 속빈 강정이다.

강 대표과 해외 사업자들과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한국은 도대체 왜 그러냐?”이다. 마치 전 세계 움직임은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 갈려고 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강 대표는 우선 정부부터 액티브 X에 대한 편애를 벗어나 선진 운영조직을 만들어서 하루빨리 웹 표준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웹 표준 기업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공인인증서를 확인하는데 액티브 X를 설치해야 하고, 파이어폭스나 구글 크롬 같은 빠른 브라우저 사용에 제약을 받아야 하고, 애플 사용자들은 쇼핑과 인터넷 뱅킹을 하지 못해야 하는가?”

강 대표는 이는 엄연히 인터넷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지금 액티브 X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웹 표준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면 사용자들 역시 그 환경에 따라올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인터넷 망을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자생 기술과 서비스로 채워야 진정한 인터넷 강국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자신문인터넷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