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피해자인 태산LCD에 대해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이 연말께 출자전환을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산LCD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키코 손실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채권자인 하나은행으로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태산LCD가 채권단 관리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최근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연말께 부채에 대한 채무 탕감과 출자전환을 협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태산LCD는 관리절차 시한인 내년초를 전후해 감자후 출자전환을 거쳐 하나은행이 최대주주로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환율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상 자력 갱생이 어렵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득이 되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풀이된다. 특히 태산LCD가 최근 삼성전자의 직접 사급을 종전처럼 도급 형태로 전환토록 요청한 배경도 하나은행의 출자전환을 전제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산LCD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조만간 출자전환을 단행하기로 하고 양측이 협의중이라고 (태산LCD측이) 최근 전했다”면서 “현행 직접 사급을 도급 체제로 바꿀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측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태산LCD는 현재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실사를 받는 만큼 추후 처리방안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일단 자산·부채 등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끝난 뒤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심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은행이 결국 전향적인 출자전환 조치를 단행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태산LCD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하나은행은 외부에 알려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지난달 전격적으로 태산LCD에 대한 채무동결 조치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태산LCD의 출자전환을 검토하는 데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올해 실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는 점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태산LCD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2507억원의 충당금을 쌓아 결국 2000년이후 처음 131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태산LCD가 완전히 문을 닫게 되면 키코 손실과 더불어 막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가뜩이나 중소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정부를 비롯한 외부 여론도 의식해야 한다.
출자전환은 태산LCD가 삼성전자의 직접 사급을 도급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운영 자금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향후 환율이 안정될때까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대안인 셈이다.
서한·안석현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