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크다!’
미국 워싱턴DC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이다. 스미소니언을 대표하는 자연사 그리고 항공우주(air and space)박물관이 특히 그렇다. 자연사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실제 크기보다 더 커보이는 코끼리 형상이 홀 중앙에 전시돼 있다.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진짜 로켓과 비행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부터 관람객은 규모에 압도당한다. 감탄과 함께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료? 공짜!=‘과연 여기는 얼마나 받을까?’ 워싱턴DC의 높은 물가에 기겁했던 사람은 DC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수많은 박물관이 모두 공짜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모두 무료다. 취지는 하나다. ‘공유하자’는 의미다. 관심이 있으면 언제든지 보고 느끼라는 것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돈이 많건 적건 심지어 미국인이든 아니든 여기에 있는 전시품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아멜리아 요논 항공우주박물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박물관 운영 펀드가 넘쳐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만들 때부터 공유하자는 취지로 시작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연간 800만∼900만명이 찾는다. 하지만, 어린이 입장객 수를 파악하지 못한다. 입장료가 없는데다가 들어갈 때 별도로 작성하는 서류도 없어서다. 전시물에 관심이 있다면 ‘이곳을 자주 찾아 공부해 먼 훗날 훌륭한 사람이 돼 이곳에 기여해달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무료 입장이지만 박물관마다 기부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게 바로 그거구나=항공우주박물관은 두 층으로 규모만 봤을때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시품 모두를 보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전시품 하나하나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 기구·비행기·로켓이기 때문이다. 전시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당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주변에도 여지없이 이를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다. 동시에 관람객들은 ‘책 또는 TV에서 본 그것을 지금 내가 보고 있구나’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역사적 인물들이 사용했던 물건들도 전시돼 있다. 별것 아니면서도 관람객의 발을 멈추게 한다. 최초의 동력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가 비행실험에 사용한 ‘스톱워치’가 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에밀리 클락(13)은 “박물관을 좋아해 여러 곳에 다녀봤다”면서 “이곳의 전시품은 명성에 걸맞게 크고 다양해 놀랍다”고 느낌을 전했다.
◇‘Please, touch(만져보세요!)’=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는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져보고 느끼라고까지 주문한다. 물론 모든 전시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Please touch’라는 단어를 본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손이 전시품에 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모조품도 현실감을 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자연사박물관에 실물 크기로 표범에 포획돼 나무에 걸쳐 있는 사슴이나, 다소곳하게 물을 마시는 기린 옆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하마 등은 관람객에게 ‘아프리카 초원에는 이런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호기심을 일깨워라=‘누가 이 연장을 만들었을까?’ ‘땅 속에서는 누가 가장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같은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전시물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왜’라는 호기심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질문 바로 아래 또는 주변에는 그 답이 상세히 적혀 있다. 알고 있던 사람도 그 대답을 찾아보며 다시 확인하게 한다.
박물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의도 인상적이다. 대부분 젊은 사람이 강사로 나선다. 방학에는 주로 고등학생이, 학기 중에는 대학생이 많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는 학생들을 왜 고용했을까. 요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쉬워서”라고 답한다. 이들 젊은 강사는 비록 학생이지만 그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쌓았고, 박물관에서도 별도의 전문 교육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워싱턴DC에 거주하며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브라이언(40)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의 기부금으로 1846년 설립된 스미소니언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DC를 중심으로 뉴욕·버지니아주 등에 총 16개의 박물관을 운영 중이다. 무료 입장이라는 혜택 등으로 연간 800만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 펼쳐진 광장(내셔널몰) 좌우 양쪽에 들어서 있다. 미국 대통령이 머무는 백악관과도 그리 멀지 않은 수도 한복판에 수많은 박물관이 놓여 있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뛰놀고 조깅하는 공원 주변이어서 어렵고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박물관이 편하게 다가온다.
스미소니언은 워싱턴DC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대표적이다. 항공사박물관에는 하늘을 나는 새를 꿈꿨던 발명가들이 만든 초기 기구와 비행선 그리고 로켓과 우주선 등을 볼 수 있다. 총 28개 전시공간에 과거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의 항공우주산업을 확인하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들이 놓여 있다.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로켓과 우주선이 전시돼 있고 왼편에는 다양한 비행기와 항공기를 볼 수 있다. 2층에는 라이트형제관, 달착륙선, 아폴로관,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됐던 군용기 전용관 등이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선사시대 동식물을 필두로 세계 각국의 자연사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화석을 연구하는 작업실을 실제로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스낵과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카페 테이블에도 유물들이 소개돼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관으로는 최초로 한국관이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 2층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관에는 한복을 비롯해 자기·옹기 등이 전시돼 있다. 자연사박물관에는 소유하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됐던 ‘호프 다이아몬드’가 전시돼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워싱턴DC에는 한국의 지하철과 유사한 메트로 등 대중교통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박물관에 인접한 스미소니언 메트로역이 있으며, 자연사박물관에서는 페더럴트라이앵글역도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