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현상 골프세상]리얼 스펙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골프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론치 모니터의 개발이다. 론치 모니터는 레이더 기술을 응용해 임팩트 순간부터 날아가는 볼의 물리적인 특성을 측정하는 기계다. 이 기계를 통해 클럽 헤드의 속도, 볼의 초기 속도, 백 스핀 양, 사이드 스핀 양을 측정할 수 있어서 넓은 페어웨이가 아니더라도 실내의 좁은 공간에서 볼이 어떤 탄도로 어느 장소에 떨어질지 예측이 가능하게 됐다. 론치 모니터와 컴퓨터의 분석 프로그램 덕택에 골프 클럽 메이커는 프로 선수는 물론이고 일반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획기적인 비거리를 선사할 수 있는 드라이버, 페어웨이 우드, 아이언 클럽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됐지만 한편, 마케팅 관점에서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드라이브 샷 거리가 200∼230야드 되는 주말 골퍼는 드라이버의 로프트가 12도일 때 10∼20야드의 추가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론치 모니터로 측정한 데이터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클럽 메이커 측에서는 이런 로프트의 드라이버를 출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새 드라이버를 구입하러 골프숍에 갔을 때, 거리가 아무리 많이 나간다고 해도 로프트 12도짜리 드라이버를 선뜻 구입하지는 않는다. 12도 로프트의 드라이버라면 팔십 노인이거나 여성 골퍼들이 쓰는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 클럽 제조업체는 어쩔 수 없이 표시 스펙과 리얼 스펙을 달리 하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로프트 12도 드라이버가 주말 골퍼에게 최장 비거리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 실제 로프트가 10도인 드라이버를 만들 수는 없으니 사실상은 12도 로프트지만 클럽 헤드에는 10도라고 표시하게 된 것이다.

 시중에 거리가 많이 난다고 소문이 난 드라이버의 리얼 스펙을 보자. 50대 후반, 60대 초반 골퍼들에게 인기가 있는 젝시오 프라임 드라이버는 표시 스펙은 10.5도인데 리얼 스펙은 12.5도로 2.5도 차이가 난다. 이래야 최장 비거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리스트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인기가 있던 905T 역시 9.5도 표시 스펙이지만 실제로는 11.5도, 10.5도 표시 스펙은 12.0도. 쓰여 있는 것과는 달리 2도 정도 로프트가 높게 설정돼 있다. 테일러메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링 모델인 버너도 1.5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 일본 회사의 표시 스펙과 리얼 스펙은 거의 2∼2.5도 차이가 난다.

 긴 거리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클럽 업체가 표시 스펙과 리얼 스펙을 다르게 표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의 결과다.